2024-04-18 10:47 (목)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역사적 장소서 에바조스팽 전시 만남 '황홀'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역사적 장소서 에바조스팽 전시 만남 '황홀'
  • 한지현
  • 승인 2024.01.03 2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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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교황청 현대 미술 전시
판지를 소재로 한 환상적인 세계 피어나
예술 작품을 통한 과거와 현재와의 만남
건물 속 이국적 자연 풍경 건축물 선봬

한지현의 '안녕 프랑스'

교황의 역사가 깃든 아비뇽 교황청과 대성당.
교황의 역사가 깃든 아비뇽 교황청과 대성당.

눈 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은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을 비롯한 세계적인 예술가들로부터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다. 이탈리아와 맞닿은 국경,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라는 지리적 특성은 풍부한 문화유산과 다채로운 자연 풍경을 자아내며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한다. 이처럼 프로방스 지역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은 휴양지로 손꼽히며, 매년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프로방스 도시 중 하나인 아비뇽은 중세시대 교황의 역사가 깃들어있는 도시다. 14세기 로마에 있었던 교황청이 강제로 아비뇽으로 옮겨졌던 '아비뇽 유수'를 시작으로, 1309년에서 1378년에 거쳐 약 70년간 7대에 걸친 교황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왕권과 교권이 대립하던 당시, 교황청은 교황들의 성채임과 동시에 도시의 요새 역할을 맡으며 추락하던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도심 외곽을 따라 원형으로 늘어진 성벽 또한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담고 있다. 대성당, 성 베네제 다리, 교황청을 포함한 아비뇽 시가지는 그 유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에바 조스팽의 손을 거쳐 태어난 웅장한 규모 궁전.
에바 조스팽의 손을 거쳐 태어난 웅장한 규모 궁전.

아비뇽 교황청은 그 역사적 가치에 더해, 오늘날 아비뇽 도시의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계적인 공연예술 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이 교황청 안뜰에서 개최될 뿐 아니라, 연중 내내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맞이하며, 아비뇽 주민들을 비롯한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 연간 전시의 일환으로 프랑스 도시 예술가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Ernest Pignon-Ernest), 중국계 프랑스 회화작가 얀 페이밍(Yan Pei-Ming), 브라질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인 바 있다.

이탈리아어로 '궁전'을 의미하는 전시 '팔라쪼(Palazzo)'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주 1월 7일까지 관람객들을 교황청으로 초대한다. 이번 전시를 맡은 프랑스의 설치미술가 에바 조스팽(Eva Jospin)은 판지를 소재로 한 건축적인 작품의 독특함과 신선함을 인정받으며,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작가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 2023'을 통해 전시 '프롬나드(Promenade)'를 소개한 바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대회의실, 응접실, 예배당 등 교황청의 여러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을 예술 속의 산책으로 인도한다.

판지를 활용한 섬세한 자연 묘사가 돋보이는 작업.
판지를 활용한 섬세한 자연 묘사가 돋보이는 작업.

교황청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대예배당에 들어서자 거대한 궁전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겹겹이 층을 이룬 판지 조각들 사이로 숲, 덩굴, 암벽, 폭포 등 이국적인 자연 풍경 또한 피어난다. 판지로 쌓아 올린 웅장한 규모의 작품들이 교황청의 고딕 건축 양식과 만나자, 몽환적인 세계가 열리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교황청의 흘러간 시간의 흔적 아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이다. 자연을 모티브로 구현해 낸 환상적인 작품을 통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물며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에바 조스팽은 파리 국립 고등예술학교를 졸업 후 영향을 받은 건축으로부터 오늘날의 입체적이면서 구조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특별하지 않은 판지 조각이 작가의 손을 거쳐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세계로 재탄생한다. 재단이 자유롭고, 풍부한 질감의 표현이 가능한 판지의 소재적 특성을 살린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자연의 기억을 간직한 나무는 판지가 되고, 판지는 또다시 작품을 통해 상상 속의 자연으로 태어난다. 숲으로 시작해 다시 숲으로 귀결되는 작품세계를 통해 작가는 '순환'의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에바 조스팽의 작품세계가 돋보이는 작품.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에바 조스팽의 작품세계가 돋보이는 작품.

과거의 역사가 깃든 교황의 '궁전' 안에서 만나는 새로운 '궁전'의 세계는 황홀하다. 이번 전시는 예술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황홀하고 풍요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 공간에서 선보이는 현대 미술 전시가 특별한 건,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들이 예술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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