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님이 제게 말했다. 인생은 참 모르겠더라고. 자신이 태어날 줄 몰랐고, 출가할 줄 몰랐고,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사찰의 주지 스님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필자 역시 스님이 될 줄 몰랐고 역사 연구를 하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그런데 옛 가야의 땅 김해에 살다 보니 우연히 가야와 가야불교에 대한 사실을 접했고 연구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우연의 연속이 결국 필연으로 되는듯하다.
가야불교를 연구하려면 모체인 가야사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게 '임나'다. 임나 문제는 한·일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그 핵심은 "임나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 위치는 어디냐?"는 두 가지로 귀결된다. 임나에 대한 문헌 기록은 위진 남북조 시대 남조의 송(宋, 420~479)에 대한 기록인 송서(宋書)와 당나라 시대 재상인 두우가 찬술한 한원(漢苑)의 중국 기록 그리고 서기 720년에 편찬된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 <숭신 65년조>의 일본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이른 최초의 기록은 서기 414년에 세워진 고구려의 광개토태왕릉비이다. 때문에 임나 문제를 거론할 때면 언제나 이 능비를 우선하여 주목한다.
능비 연구는 우연한 기회로 시작되었다. 2021년 말부터 부산불교방송에 매주 월요일 아침 10여 분 남짓 가야불교를 전화로 인터뷰했었다. 일 년 이상의 경과로 이야기 소재도 거의 소진 되어 갈 무렵, 코너 진행자 박찬민 기자가 임나일본부에 대해 다뤄보자고 제안했다. 역사를 잘 몰랐던 진행자가 일 년 이상 코너를 진행하다 보니 우리 역사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임나에 대한 첫 인터뷰는 당연히 광개토태왕릉비였다. 그런데 막상 방송은 했지만 10여 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라 청취자들께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했고 인터뷰 후에는 뭔가 모를 아쉬움마저 남았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 추가로 설명하기 위해 비문과 관련한 자료를 찾던 중 책장에서 몇 년 전 얼핏 읽었던 책을 한 권 보게 됐다.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라는 이 책은 서체(書體) 전문가인 전북대 김병기 교수의 저술인데, 꼼꼼히 살펴보니 이분의 주장대로 학계에서 말하는 소위 <을미년조>(신묘년조로 잘못 알려짐) 기사에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고구려의 위대한 영웅인 태왕의 비문 가운데 유독 <을미년조> 기사만 문장에서 서로 충돌하며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국대 임기중 명예교수의 편저 『廣開土王碑原石初期拓本集成』에 나오는 여러 탁본과 사카와의 '쌍구가묵본'을 비교해 보니 비문 변조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역사의 사라진 진실을 찾기 위해선 마치 탐정이 범인을 잡는 방법과 비슷했는데, 범인을 잡으려면 먼저 범인의 입장에서 범행 목적과 범행방법 등을 생각해야 했다. 결국 일제는 한반도를 정복하기 위한 정한론의 도구로 <임나일본부>를 한반도에 있다고 왜곡시켰고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을미년조>를 변조했던 것이었다. 이후 필자는 수개월간의 씨름 끝에 변조된 <을미년조>의 원래 글자와 결실자를 복원했으며, 기존의 연구를 참고하여 몇 가지 주요 쟁점들을 새롭게 해석했다. 또한 논문으로 정리해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이를 다시 칼럼으로 연재했다.
학문의 목적은 진실의 규명이다. 그래서 필자는 사라진 비문의 진실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변조 전의 원석탁본이 다시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연구자의 주장도 진짜라고 확정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연구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질문과 토론을 계속해 간다면 집단지성의 힘으로 결국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필자는 최근 유튜브 강의 PPT 말미에 필자의 핸드폰 번호를 남겨두었다. 누구든지 의문이 있으면 함께 토론하고 탐구해 보자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진정한 열정과 안목을 가진 지음자(知音者)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세상은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곳이다. 특히 경직된 관념을 가진 기존의 세력이 크면 진실이라도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나 진실은 작아 보여도 '진실의 힘'이란 게 있다. 필자는 이미 가야불교와 <허왕후 신혼길>의 연구를 통해 '진실의 힘'을 확인했다. <허왕후 신혼길> 발견의 경우 세상에 처음 발표했을 때 함께 연구했던 분들조차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들도 1차 사료인 『가락국기』 원문기사의 설명과 함께 현장을 답사한 이후 기존의 잘못된 관념을 내려놓았었다.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차 눈 밝은 사람이 많아지고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깨어난다면 거짓은 물러나고 진실은 반드시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