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념 불꽃의 혼으로 만든 도자기, 창원서 선보이다
일생일념 불꽃의 혼으로 만든 도자기, 창원서 선보이다
  • 장영환 기자
  • 승인 2023.12.07 2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로 이사람
운당 김용득 사기장 (운당도예)

운당 김용득 사기장의 '동화요변'
불꽃의 '혼'은 경쟁자이자 스승
'시간과의 경쟁' 기다림의 미학
13일 창원 성산아트홀서 전시회
운당 김용득 사기장이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다.
운당 김용득 사기장이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다.

도자기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에 의해 완성되는 예술이라고 흔히 일컬어진다. 도자기의 제작은 사람(人)의 정성이 흙(地)을 만나 자연(天)의 작업인 불을 떼는 것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기장은 사람의 정성과 양질의 흙은 구비할 수 있지만, 자연까지 손에 넣을 수는 없다. 자연의 작업은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다. 이 도자기의 제작에 있어서 '불'은 마치 자신이 나름의 '혼'을 가지고 있는 듯이 사기장의 손 밖으로 나가 도자기를 이리저리 에워싸며 자신을 불어넣는다. 사기장은 자신의 손에서 떠난 가마 속 도자기를 애태우며 바라볼 뿐이다.

일생일념(一生一念), 불꽃의 '혼'과 마주하는 어느 도자기의 장인은 이 애태우는 과정을 한편으로는 "시간과의 경쟁"이라고 말한다. 자신(人)이 불꽃의 혼(天)과 '시간'을 두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긴 싸움이 지나고 가마 속에서 잃어버린 싸움의 주도권은 도자기의 탄생을 통해 장인에게 돌아간다.

좋은 물과 흙, 땔감이 풍부한 김해시 진례면의 서부로 860번길 25, 이곳에는 한평생을 불꽃과 마주한 장인이 살고 있다. 운당(雲塘) 김용득 선생이다. '연못(塘) 속의 구름(雲)과 논다'는 그 호(號)의 뜻처럼 그의 전시실이라는 '연못' 위에는 도자기들이 무수한 구름과 같이 단아하게 피어 있었다. 오색찬란 은은한 도자기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얼마 안 있어 선생이 나타났다. 다실에 들어서자 방 내부 벽면에는 다양한 차 사발과 자기들이 옹기종기 전시돼 있었다. 선생은 그중에서 찻잔 세트 하나를 꺼내 들고, 거기에 오래된 갈색 나무통 속 찻잎을 우려내줬다.

운당 김용득 사기장이 가마에 불을 붙이기 위해 장작을 때고 있다.
운당 김용득 사기장이 가마에 불을 붙이기 위해 장작을 때고 있다.

운당 사기장의 생애

경남, 아니 전국에서 도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생은 경남도 '최고 장인'이라는 타이틀과 수많은 상장, 저서, 전시회, 도록,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큰 명성을 얻었음에도 운당 선생은 본인을 "배움이 짧은 고향에서 그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겸허히 소개했다. 한평생 도자기라는 외길만을 걸어왔기에 다른 것에 대해 그다지 말할 것이 많지 않다는 그는, 하지만 도자기를 얘기할 때에는 마치 다른 사람인 양 눈빛이 다르다.

선생은 어렸을 적부터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당시 집안의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남의 집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생활이 고될 때마다 옹기를 만들던 조부를 찾아 고달픔을 달래고는 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옹기 옆에서 잠을 청하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선생과 '흙'의 인연은 여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4세, 어머니를 따라 방문한 시장에서 우연한 기회로 봤던 도자기의 매력에 빠진 선생은 이때부터 도자기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16세 때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의 방곡 서동규 선생을 찾아간다. 이곳에서 5년간 도예의 기초를 습득한 후, 고향 김해의 도예 대가 종산 배종태 선생의 부름을 받는다. 운당 선생은 그동안 방곡 선생에게 탄탄히 배운 기초를 토대로 종산 선생으로부터 흙과 불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어느 정도 입지를 한 199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독립'을 준비한다. 이후 그만의 '동화' 세계가 열린다.

운당 김용득 사기장이 장작불을 때고 있다.
운당 김용득 사기장이 장작불을 때고 있다.

진사에서 동화로

예전에는 붉은빛을 띠는 도자기를 진사(辰沙) 도자기라고 불렀다. 진사는 주성분은 황화수은(HgS)이고, 진한 붉은색을 띠고 다이아몬드 광택이 난다. 기자가 '진사'란 단어를 언급하자 운당 선생은 "진사란 중국과 일본에서 쓰는 표현으로 동화(銅畵)의 다른 이름입니다"라고 했다. 선생은 자신의 작품을 동화로 부른다. 진사는 동화를 흉내 낸 것으로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진사와 동화는 색의 깊이와 다양성에서 차이가 납니다"라고 말했다.

선생이 만드는 동화 유약은 산화구리에 여덟 개의 안료를 혼합해 쓰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조차 동화를 진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담긴 '우리의 도자기에' '우리의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 부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제 도자기를 '동화'로 명명했습니다. 제가 이 명칭을 고수하고, 나의 동료가 이 명칭을 사용하자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문가들도 진사를 동화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도자기의 우리의 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운당과 동화요변

2층 전시실에 올라가자 다음 전시회 작품 준비가 한창이었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선생은 붉은빛을 가득 머금은 동그란 자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백자동화요변 호(壺)'였다. 선생의 작품 '동화요변' 중 하나다. 동화요변이란 구리의 동(銅), 그림의 화(畵), 도자기를 구울 때 가마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인 요변(窯變)을 의미하는 말이다. 자기의 모양은 이름 그대로 '요변'이 일어난 것 같았다. 이에 대해 묻자 선생은 "불이 만드는 것. '불의 임의성', '형태에 따라 일어나는 창작'이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도자기에는 불이 이리저리 노닐고 간 흔적이 가득하다.

"일반적으로 도자기의 창작에는 도예인의 '이미지'가 들어갑니다. 그러나 동화요변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나의 '이미지'를 최대한 넣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신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닌, 불이 선생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니, 이는 '이미지'를 향한 기다림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모양, 내가 생각하는 색깔, 내가 생각하는 질감, 물론 이러한 것들이 있지요. 그러나 저는 '인위'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불이 창조하는 바를 기다립니다. 원하는 모양이 나오든 그러하지 않든 말입니다." 이처럼 '불'이 창조한 이미지와 그에 따른 작품에는 '같은 도자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화의 매력은 이 '요변'에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운당 김용득 사기장의 전시실 내부 모습.
운당 김용득 사기장의 전시실 내부 모습.

운당과 불

운당 선생의 '일생일념(一生一念)'의 길에 있어서 '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선생에게 있어서 불은 경쟁자이자 협력자요, 창조자이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가마에 들어간 도자기를 애태우며 기다리게 만드는 불은 경쟁자이고, '이미지'를 부여하는 불은 협력자이다. 작품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불은 창조자이고, '실패'의 씁쓸함을 맛보게 하는 불은 스승이다. "불에는 자연의 '혼'이 있습니다. 이 불의 '혼'이야말로 제 도자기관(觀)의 핵심입니다. 이 불이라는 게 참 재밌는 것이라서, 어떨 때는 저와 '경쟁'하고, 어떨 때는 저와 '조화'합니다. 이러한 불과의 '상호작용'과 그 과정 속 '기다림'이 '동화'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은 '가스불'로 만드는 동화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바로 '불'과의 '경쟁' 혹은 '조화'라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장작으로 만든 작품과 가스로 만든 작품은 색깔이 다릅니다. 가스로 만든 작품은 새빨갛습니다. 눈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스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불'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영역입니다."

운당 김용득 사기장의 동화요변호.
운당 김용득 사기장의 동화요변호.

기다림

불의 또 다른 매력은 '기다림'이다. 불은 가마 속에서 도자기의 완전한 통제권을 쥐고 장인으로 하여금 겸허한 자세의 기다림을 부여한다. 이 시간 속에서 장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선생은 가마 속에 들어간 도자기를 지켜볼 때 가장 애가 타고, 한편으로는 설렌다고 말한다. "가마 속 도자기를 구울 때 가장 애가 탑니다. 그리고 궁금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이고, 저것은 어떻게 나올 것이고. 머리 속으로 수없는 상상을 합니다.

과연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올까? 관객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나올까? 작품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등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마에 불을 떼고 3일이 됐는데,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마의 문을 열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흘러들어왔고, 작품들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처럼 불은 선생과 '시간의 경쟁'을 하며 '실패'의 쓴맛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리고 불이 부여한 '기다림'의 미학을 이뤄냈을 때 비로소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회

코로나로 인해 모든 전시가 중단된 이후 한동안 선생은 도자기 제작 외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최근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짧게 들려줬다. "굳이 먼 길을 통해 제 작업실로 찾아오지 마시고 도심 가까이서 많은 분들이 동화의 매력을 느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흙을 벗 삼아 물레를 돌리고 불을 지핀 선생의 '혼', 그리고 불의 '혼'을 사람들과 더욱 나누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운당 선생의 전시회는 오는 13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되며, 장소는 창원 성산아트홀 제3전시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