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떤 속도로 오느냐는
아이의 물음에
과학자는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라 말하더군.
며칠 내내 부풀기만 하던 분홍빛 꽃봉오리가
한꺼번에, 온통 눈부시게 터져
미세먼지 뒤덮였던 하늘이 드맑게 눈을 뜨는 아침.
이걸 보았다면 과학자는
그 꽃나무 옆 시냇물이
구름을 타고 여행 갔다가 돌아와
하늘의 금모래 같기도 뱀 비늘 같기도 한 별 이야기를
꽃망울들에 들려주는 속도라 말하지 않았을까.
사람에게 스며든 꽃향기가
사람의 숨결로 어디 까마득한 데 여행가는 때 먼 옛날 나였던 꽃나무가
지금은 사람이 되었다고,
꽃나무가 사람이 되는 속도로 봄은 온다고 들려주면
아이는 시시한 마법이라고
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놀려대겠지.
그러나 먼 훗날의 아이가
나무 안에서 분홍빛 꽃눈으로 자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면
봄의 속도는 차츰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오늘을 잊어버리고 내일도 모레도 잊어버리고
드디어는 고요에 가 닿는 영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
☞ 사람들은 우스갯말로 세월이 흐르는 속도는 나이와 같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마치 차량의 속도처럼 지난다고 말한다. 자신이 늙어가는 속도만큼 주위의 자연도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다. 시인은 속도를 봄에 비유해서 들려준다. 그 속도는 '별 이야기를 꽃망울들에 들려주는 속도'라고 말하고, '꽃나무가 사람이 되는 속도로 봄은 온다'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고요에 가 닿는 영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가 있겠다. 인생은 봄의 속도처럼 왔다가 봄의 속도처럼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배한봉 시인
- 1998년《현대시》신인상 등단.
- 시집《육탁》,《주남지의 새들》,《우포늪 왁새》외 여럿.
- 산문집 《당신과 나의 숨결》 외 여럿.
-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풀꽃문학상 외 여럿 수상.
임창연 (시인·문학평론가)
- 1998년 《매혹》으로 등단.
- 시집 《 아버지 뿔났다 》,《 사차원 놀이터》외 여럿.
- 디카시집 《화양연화》
- 사진묵상집 《사랑은 언제나》 등.
- 마산문인협회 회장.
창연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