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5:11 (일)
엘리트 시대의 종말
엘리트 시대의 종말
  • 경남매일
  • 승인 2023.12.0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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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엘리트(Elite)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회에서 우수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또는 그 결과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 지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현재 한국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직업군은 대체로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수의사, 약사, 변리사, 회계사, 행시ㆍ외시합격자, 박사급 이상의 전문연구원, 교수 등이다. 그러나 시대변화에 따라 대기업임원, 공룡플렛폼그룹 CEO, 재벌그룹 CEO, 영향력 있는 각종 사회단체장, 포털사이트 인플루언스 등 세밀하게 분류하면 더 많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전문직업인의 5% 내외가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미하엘 하르트만 박사는 그의 저서<엘리트 제국의 몰락>에서 엘리트 계층의 문제점과 종말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엘리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지식인과 지적 엘리트는 차이가 있으며, 이들이 엘리트의 결정적 기준을 충족하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 결코 훌륭한 리더나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다는 것이다. 리오넬 메시나 호날두 같은 축구선수가 스포츠계엔 큰 영향력을 미치며, 언론엘리트의 파워는 더욱 노골적이다.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닉슨은 워싱턴포스트지 밥 우드워드 기자의 집요한 추적보도에 의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했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엘리트 계층의 형성은 엘리트 교육과 사회적 배타성에 의해 소위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사회적으로 철저히 분리된 철옹성을 쌓고 그들만의 집단을 구성하고 있다. 그 시발점은 엘리트학생이라는 학연에 의해서 생겨난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중국의 북경대와 칭화대, 일본의 도쿄대와 쿄토대, 프랑스의 ENA, 한국의 S.K.Y. 출신들이 대표적이다. 학맥으로 연결된 엘리트 계층은 그들이 졸업 후 취득한 각종 특수자격증과 직업(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에 의해 철옹성의 배타적 직군을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엘리트 대학이 사회적 배타성을 낳고 있음에도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신봉하고 인정하면서 그 부류에 소속되길 모두 갈망한다. 그러나 문제는 철옹성을 쌓고 있는 엘리트 계층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법위의 사람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지식층과 엘리트 계층의 정의사회 구현의 양심이기도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외면한 채 독점적 사익 추구에 혈안이다.

그들은 직업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고소득을 올리면서 탈세는 했지만 죄는 짓지 않았다는 이율배반적인 자기 합리화의 도그마에 빠져있다. 합법적인 회색지대를 이용한 교활한 수법의 착취는 일반사회 구성원의 태도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소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서민들의 푸념은 엘리트 계층이 합법을 가장한 불법 행위를 정당행위로 위장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에서 기인한다. 엘리트 계층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리더가 아닌 이익독점 세력으로 군림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상류층을 위한 눈치보기 정치, 정치엘리트의 자본가화, 정부엘리트의 대기업 정책, 엘리트 출신들의 국가정책 결정 등, 사회정의에 대한 태도에서 엘리트 계층은 갈수록 불평등 사회를 조장하고 있다. 특히 공익보다는 사익 추구에 경도된 엘리트 계층의 규칙 즉, 과세는 강탈이요, 탈세는 사소한 위반이라는 합리적 의심과 함께 범죄의 뒷배 노릇으로 대규모 금융범죄를 합법화하기도 한다. 사회적 격차의 필연성을 당연시하며, 높은 지적능력과 수월성에 기인한 오만과 편견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다.

얼마 전 지방소멸 대책의 일환으로 모시 소재 대학에 로스쿨을 유치해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그 지역 지방변호사회에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전형적인 제 밥그릇 챙기기 이기심의 발동으로 지역사회 발전은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 집단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부에서 절대 부족한 의사 양성을 위해 의대 정원의 대폭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에 정부방침이 발표되기가 무섭게 의사협회가 즉각 반대성명서를 내고 강행 시 전면파업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성 경고를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신성한 선서는 시궁창에 나뒹굴고, 형평과 정의의 상징인 유스티티아와 디케는 별 달린 해태와 저울을 든 여신상일 뿐이다. 이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오히려 엘리트가 뛰어난 개인이 아닌 배타적 계급이 되어 탈세 스캔들과 성추문, 상습 마약 흡입 같은 반사회적 행위에 가담함으로써, 선지자인 프로메테우스가 가면을 쓴 페르소나로 변신한 형국이 되었다.

이제 세상은 AI라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 머지않아 AI 의사, AI 변호사, AI 회계사가 사람을 대신하는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다. 양자역학으로 업그레이드된 AI시대의 거대한 변화 물결에 휩쓸려가기 전에 정예인(精銳人)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지 않으면 '엘리트 시대의 종말'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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