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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문화와 밀 문화
쌀 문화와 밀 문화
  • 경남매일
  • 승인 2023.11.1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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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동양에서는 가족을 '식구(食口)', 즉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서양에서는 가족이나 전우를 빵을 같이 먹는 사람, 'Companion'이라고 부른다. 'Com'은 '함께', 'panis'는 '빵'이라는 뜻이다. 회사라는 뜻의 컴퍼니(Company)도 함께 열심히 일해서 빵 사 먹을 돈을 버는 단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산업혁명이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이나 중동이 아닌 영국에서 시작된 원인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은 지리, 제도, 종교, 유전자의 차이를 늘어놓기도 하지만,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토마스 탈헬름(Thomas Talhelm)은 쌀문화(쌀농사 지역)와 밀문화(밀농사 지역)의 차이를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어 이색적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밀은 쌀보다 더 먼저 재배되었다. 탈헬름 교수에 의하면 약 8000년 전부터 시작된 벼농사는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쌀은 원산지가 동남아 일대인 아열대성 기후대로 많은 물과 일조량, 비옥한 토지를 필요로 한다. 노동력만 많이 투입하면 면적 대비 엄청난 양의 쌀을 생산해 낼 수 있다. 단위 면적당 계산하면 쌀농사가 밀농사에 비해 10~20배나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벼농사는 수 세대에 걸치면서 집단주의를 낳았고 '쌀 문화'를 형성했다. 벼농사에는 물을 끌어오고 공급하는 관개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 일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하고, 끌어온 물을 여러 농가가 나눠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동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정서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앙집권적 왕권 국가가 형성되었다.

이에 비해 밀은 다소 춥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녀 유럽에서 많이 재배되었다. 또한 물이 없는 맨땅에서도 잘 자라고, 노동력도 쌀농사의 절반 정도만 있으면 된다. 벼농사는 1년에 3000시간을 투입해야 하지만 밀농사는 그 절반도 안 되는 1400시간 정도만 일하면 된다. 서양에서는 중세 이전에 유목과 농경을 같이 하면서 살았다. 적당히 씨를 뿌리고 유목생활을 하다가 작물이 다 자랄 때쯤 돌아와 수확을 하는 것이다. 밀은 사람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잡초와 병충해에도 강했다. 유럽이 동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분권적 도시국가가 발달한 것이 설명이 된다.

쌀은 껍질을 제거하는 도정과정이 쉽고 삶거나 쪄서 먹기도 쉽지만, 밀은 낱알이 쉽게 깨지기 때문에 껍질만 분리해 낼 수 없다. 그래서 통째 가루를 내서 체로 치는 과정(제분)을 거친다. 제분을 위해 큰 규모의 방앗간이나 공장이 있어야 했고 다양한 기계가 필요했다. 16~18세기 유럽에는 제분용 풍차가 20만 개 넘게 있었다.

제분을 한 후 빵을 만드는 것도 어렵다. 빵은 밀가루에 효모를 넣고 여러 번 반죽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오븐이 적정온도가 될 때까지 불을 때고 반죽을 넣고 굽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진다. 빵 만드는 것이 이렇게 어려우니까 집에서 빵을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빵을 만들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장원마다 빵 공장을 운영했다.

동서양의 다른 기질과 문화가 주식(主食, staple food)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은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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