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0 04:09 (토)
관천재 앞서 나눈 담화
관천재 앞서 나눈 담화
  • 경남매일
  • 승인 2023.11.1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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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최초 의병장 '사충신'
송빈·이대형·김득기·유식 순절
김해부사 대신해 병사 이끌어
이대형 집안 삼강서 삼방동 유래
지역 향토사 관심·실천 선행 필요
김정권 전 국회의원
김정권 전 국회의원

"이 건물은 뭡니까?" 아들이 어릴 때 살았던 삼방동의 신어천 주변 거리를 함께 걷다가 '관천재(觀川齋)'라는 한옥이 보이자 아들이 나에게 던진 물음이다.

"너는 임진왜란에서 유명한 의병장으로 누구를 알고 있는데?"

그 질문에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던 아들은 자길 무시하냐는 표정으로 홍의장군 곽재우를 시작으로 사명대사, 고경명, 김언륜, 정문부 등을 나열하기에, 그렇지만 최초의 의병장은 송빈(1542-1592), 이대형(1543-1592), 김득기(1549-1592), 유식(1552-1592)이라는 '사충신(四忠臣)'이 있고 임란 당시 최초의 의병장이었다'고 했고 그렇게 부자간의 토론은 더 깊어졌다.

김해에는 자랑스러운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고향이 김해는 아니지만 오늘날 정신적으로 경남과 김해에 큰 족적을 남기신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께선 처가인 김해에서 장년 시절을 보내셨다. 선암다리에서 대동면으로 가다 보면 수안리(주부동)라는 마을 산기슭에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안으로 밝히는 것이 경(敬)이요, 밖으로 결단하는 것이 의(義)다. 이른바 경(敬)으로써 수양하고 의(義)로써 실천한다'는 '경의사상(敬義思想)'을 바탕으로 후학을 지도하며, 당대의 석학들과 시문강론(詩文講論)을 이어온 남명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곳이 김해다. 남명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곽재우 장군을 비롯해 50여 명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지역을 사수한 사실은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왜군이 부산에서 서부 경남으로 가는 길에 김해를 거쳐 가는데 김해성 전투에서 겁에 질려 도주한 김해부사를 대신하여 남은 병사를 수습하여 싸우다 순절한 사충신도 남명의 경의사상의 영향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담화를 나누다가 김해의 사충신 중 이대형의 후손들이 건립한 관천재를 지나다가 재령이씨들의 독특한 이력이 떠올랐다. 이대형의 선조 '이오(李午)'는 고려말 진사로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하여 조선을 건국하자 함안에서 고려동(高麗洞)을 짓고, 그 담장 안에서 자손들에게 '담장 밖은 조선이니 고려동 안에서 생활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후손들은 수백 년간 지켜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살아있다. 현대에 와서는 특임 장관을 지낸 '이재오' 국회의원, 그리고 김해 삼방동 출신인 정보사 소장으로 예편한 '이병조' 장군. 이런 분들도 재령 이씨다.

아들과의 토론은 삼방동의 마을 이름 유래까지로 이어졌다.

이대형이 왜군과 싸우다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이우두'가 김해성으로 들어가 싸우다 죽고, 이대형의 조카 또한 왜군에 저항하다가 못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이대형의 충정, 아들 이우두의 효행, 조카 이씨의 열행. 모두가 삼방동에서 나와 선조 임금이 삼강(三綱)의 꽃다운 인물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삼방(三芳)'이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삼방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것이니 이 유래를 아는 지역민의 자긍심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아들이 물은 관천재는 그 후손들이 고향 신어천 변에 건립한 이대형의 호(號)인 관천재에서 딴 건물이다.

잃어버린 나라보다 더 슬픈 것은 잃어버린 역사다.

김해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많다.

오래전에 향토사 교육의 소중함을 알자는 신문에 칼럼을 쓴 적이 있었고, 지역 학교에서 향토사 교육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한 적도 있다. 그 영향 탓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김해 교육청(이진규 교육장)에서 '가야의 얼:김해의 뿌리를 찾아' 책을 발간하여 보급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김해의 젊은이들이 경(敬)과 의(義)를 이해하고 김해의 역사 문화의 관심과 실천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관천재에서 김해를 지켜온 영웅호걸과 대화를 하고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세월을 보내도 되는 걸까?

텅 빈 주먹 몰래 쥐어보며, 사충신을 기리는 송담서원(松潭書院) 방향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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