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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과 환향녀
병자호란과 환향녀
  • 경남매일
  • 승인 2023.10.2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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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조선 인조 임금 때 정묘호란에 이어 발발한 병자호란은 '삼전도의 치욕'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청나라로 끌려간 포로가 60여만 명에 이르렀는데 그중 50여만 명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청나라는 소현세자를 볼모로 끌고 가 심양에 머물게 하면서 군량미를 비롯해 갖은 특산품을 진상토록 협박했다. 이런 와중에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중국 현지인들에게 노예처럼 매매되었다. 그중 일부는 조선에 사는 가족들이 포로의 송환 대가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게 속환(贖還)시켜 주었다.

이때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還鄕女)-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 불렀다. 그러나 비록 속환되어 고향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 겪은 수모와 냉대는 비통함을 넘어 절통함에 이르렀다. 청나라 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힌 천한 여자라며 온갖 치욕과 고통을 겪으며 남은 생을 살아야만 했다. 더욱이 남편을 두고 잡혀갔던 여성들은 정조를 유린당한 여자라 하여 가문의 수치라고 이혼까지 당했다고 하니 얼마나 한스러웠겠는가.

그런데 조선으로 속환된 환향녀가 남의 남자와 서방질한 계집을 지칭하는 '화냥년'의 어원이었다는 것은 잘못된 속설이다. 환향녀가 화냥년의 어원이라는 속설은 해방 이후 퍼진 것으로 보이며 전혀 근거가 없다. 양주동 박사는 화냥년은 환양( 豢기를 환, 養기를 양)에서 유래했다며 나쁜 사람이거나 가축을 기르는 비천한 신분의 사람을 비하해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조선성종실록에는 '음란한 짓을 마음대로 행하여 교화를 오염시킨다고 하니…. 엄중하게 논죄하도록 하는 것이 편합니다. 이제 유녀(遊女)라 칭하고, 혹은 화낭(花娘)이라 칭하며 음란한 짓을 제멋대로 하니 이를 금제하는 조목을 뒤에 자세히 기록합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과부 어머니가 옥희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위의 사례 어느 곳에도 환향녀가 화냥년의 어원이라는 속설의 근거나 기록은 없다.

요즘 MBC드라마 연인 2부가 다시 방송되고 있다. 심양에 있는 이장현을 찾으러갔다가 포로 사냥꾼에게 납치된 유길채의 기구한 운명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져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노려 가장된 연출도 있겠지만 50여만 명의 조선 여인들이 겪은 수모와 고통은 만권의 소설로도 다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무능한 임금과 신하의 나라에 태어난 업보이기에 지난 역사의 기록으로만 상고할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참극은 세계도처에서 벌어졌거나 현재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팔레스타인과의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희생되는 사람은 부녀자와 어린이, 노약자들이다.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고 살상하는 천인공노할 짓들은 사람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지 증명하고도 남는다. 비록 전쟁이 없을지라도 사회제도적 악습과 종교적 신념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여성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방기된 채 신음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환향녀의 비극은 본인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주홍 글씨가 되었다. 조선실록에 의하면 고향으로 속환된 환향녀들이 한양도성 북쪽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들어오면 그간의 허물을 탓하지 않겠다는 기막힌 제도까지 만들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또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자를 집안에 그대로 들일 수 없다고 조선의 못난 선비들은 집단 이혼요구 상소까지 올렸다니 그녀들이 겪은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심지어 양반댁 규수 중 많은 여성들이 수모를 견디다 못해 가문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며 자결까지 했다고 한다. 약소국 나라의 백성들이 겪은 수모와 고난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오랑캐들의 포로가 된 것이 어찌 그녀들의 탓이었겠는가. 이에 더하여 환향녀들이 낳은 자식들마저 '호로자식'이라고 천대해 그녀들의 비극적인 삶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으니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드물지만 필자가 어린 시절 욕설 중 가장 심한 욕이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었다. 편모슬하의 자식이나 행실이 나쁜 애들에게 어른들이 하는 욕이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화냥년'이 가장 심한 욕이었다. 이제 세상이 너무 변해 화냥년의 의미조차 무색한 세상이 되었다. 억울하게 포로로 끌려가 치욕을 당한 조선의 환향녀는 화냥년의 어원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일 뿐이다. 역사는 쉼 없이 흐르고 죽지 않고 살아있다. 지난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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