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5:16 (일)
바다와 나주댁  - 문인선
바다와 나주댁  - 문인선
  • 경남매일
  • 승인 2023.10.25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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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나주댁과 친했다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던 바다
아무도 없는 바다 속에서
단 둘이 만나면
소주 한 잔 마신 적 없어도
조개를 까듯 속내를 다 까 보여주곤 했다
바다는 늘 같이 사는 비진도의 동백은 몇 그룬지 몰라도
남편 없는 나주댁의 가정사는 낱낱이 알고 있었다
두 아들과 두 딸이 나주댁이 메고 있는 등짐이라는 것도
앞가슴에 차고 있는 저 망사리에 뭘 채워줘야 하는지도
대학 등록금 때는 바다가 먼저 전복 한 마리 더 내어주고
딸이 시집 갈 때는
전복 속에 숨겨 키우던 진주까지 내어주었던 바다
비올 때는 맨 몸으로 비 맞으며 손잡고 울어주던 바다
자식 커서 하나 둘 출가 다 시키고 난 나주댁
억척같은 삶 밀물처럼 늘 가슴에 찼던 고독
썰물이 빠져 나간 갯벌처럼 허전한지
갈매기도 비에 젖는 날이면
선창가 목포집에서 옷고름 풀어헤치도록 소주병을 까고는 
네가 나를 살렸다 네가 내 엄마다 네가 내 엄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죽어서도 내 뱉을 나주댁의 저 숨비 소리


시인 약력

 

- 시인·시낭송가
- 문학평론가
- 경성대 시창작아카데미 교수
- 교육청연수원 강사
- 전 평화방송목요시 담당
- 한국문협중앙위원
- 시집 '천리향' '애인이 생겼다' 외
 다수·동인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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