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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
  • 경남매일
  • 승인 2023.09.2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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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박인수 사건'이라는 1955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형사 재판이 있었다. 헌병 출신인 박인수는 해군 대위를 사칭하며 뛰어난 사교춤 실력으로 댄스홀에서 여성들을 유혹하고 1년간 70여 명의 미혼 여성을 농락하다, 결국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무죄가 선고되었다. 판결 요지는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였다. 이 말은 근 7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명언이 되었다.

그는 말했었다. "그들과는 결코 결혼을 약속한 사실이나 약속할 필요도 없었다. 댄스홀에서 함께 춤을 춘 후에는 으레 여관으로 가는 것이 상식이었으므로 구태여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빙자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그 여성들 중 처녀는 하나뿐이었다고 하여, 순결 확률이 어쩌고 하는 유행어가 퍼지기도 했다. 지금의 성윤리와 법리에서는 그 판결의 의미를 따질 가치는 사실상 없다. 하지만 '기술탈취'의 설명에 좋은 비유로 써먹을 수 있다.

박인수 사건은 '기술탈취' 이슈와 많이 닮았다. 스타트업 등은 자신의 제품을 팔기 위해 파트너 기업을 애타게 구한다. 춤을 즐기려 잘 차려입고 댄스홀에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건실한 큰 기업을 찾아가 자신의 기술을 뽐낸다. 멋진 기술일수록 매력적인 여성을 대하듯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 상대가 호감을 보이면 기대감과 희망이 점차 부푼다. 그런데 담당자들이란 대체로 실적 욕심이 크다. 내용을 좀 알고 나면 굳이 그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혹은 더 싸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분쟁 등 문제 발생 가능성을 잘 따져보고, 독자나 하청 개발을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제안 기업은 배신감에 분노하고, 마치 혼인빙자간음이라도 당한 듯, 기술을 탈취당했다고 비방하며 동네방네 떠든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뻔뻔하게 말할 것이다. "그들에게 특별히 뭔가를 약속하지 않았다. 그저 만나주고 조금 부추겨 주면 으레 기술을 자랑하며 스스로 다 털어놓는다. 그러니 구태여 기술을 훔치겠다고 뭔가 미래를 약속하는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기술만을 보호한다.' 기업의 정조는 기술이며, 그 순결성이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가름한다. 그런데 사례들을 보면, 실제로 '보호 가치가 있는 기술'이 탈취된 경우는 거의 없다. 왜 그럴까? 그런 기술은 권리자가 이미 스스로 보호 가치를 적극적으로 증명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방자 입장에서도 사전에 리스크를 검토하고, 확실한 안전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베끼려 덤벼든다. 그게 본능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권리자든 모방자든 비즈니스에서의 최소한의 직무조차 유기한 것이다.

기술의 보호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당연히 '특허'다. 특허는 특허청 심사관의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그야말로 보호 가치가 있는 기술만 엄선한 것이다. 특허로 무장된 기술은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고, 특허 침해가 있으면 굳이 떠들어댈 것 없이 깔끔히 특허공격을 하면 된다. 특허는 일정한 영역의 논이나 밭과 같아서, 그 영역 내에서만 배타적 지배력이 힘을 쓸 수 있다. 그래서 모방자가 상대의 특허를 알면, 남의 논밭을 피해 농사를 짓듯, 그 특허의 영역을 회피해서 제품을 만든다. 이는 건강한 기업들에게 매우 상식적인 업무 활동이다.

또 다른 증명 방법은 '영업비밀'이다. 이 역시 '법이 보호 가치가 있는 기술'로 인정하는 것이다. 영업비밀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기술이어야 한다. 즉 비밀성, 경제성, 비밀관리성의 3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비밀관리성'은 권리자가 비밀유지에 관한 적극적인 인식과 의지를 가지고 적절히 노력해야 함을 뜻한다. 이 요건은 최소한의 시스템적 조치만으로도 대비가 용이한 편인데도, 이를 충족하지 못하여 좌절하는 기업이 많다. 그리고 '비밀'이란 건 다루기 까다롭다. 비즈니스 미팅 등에서 일단 누구에게든 알려지고 난 비밀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업비밀은 휘발성이 무척 강하다. 그런 것을 사전 대비 없이 마구 자랑하고 다니는 것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조심성 없이 행동하는 것과 같아서, 못된 상대에게 휘둘려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까다롭게 가리면 사람 관계든 비즈니스든 진척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기술 미팅을 나갈 때는 반드시 철저한 사전 준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특허로 가능한 것은 반드시 특허출원을 해두고, 특허로 적절치 않은 비밀 기술은 영업비밀 원본 인증 서비스 등을 이용하면 된다. 특허 출원으로도 어느 정도 영업비밀 보호가 가능하다. 맥아더 장군이 말했지 않은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경계와 전략에 실패하여 자신의 핵심역량을 특허로서도 영업비밀로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술탈취를 당하면 그 억울함을 그저 언론에 대고 하소연을 해댄다. 그런 소란이 있으면 큰 기업들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적절히 타협하고 넘어가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정말 괜찮은 기술이라면 결국에 또 다른 모방자가 나서기 마련이다. 그렇게 탐을 내는 누군가가 없다면 그 기술이 혹 매력이 없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남들이 탐을 낼 기술을 가졌다면 꼭 명심하라.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기술만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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