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3 03:34 (토)
박정희 대통령 "시간 내서 박 중령 부대 가서 김치 시식하겠네"
박정희 대통령 "시간 내서 박 중령 부대 가서 김치 시식하겠네"
  • 박광수 논설위원
  • 승인 2023.09.2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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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도전과 길
7편- 한국에 위대한 유산을 남긴 청렴의 상징

태평양전쟁 방공호에서 공부
'수학귀신' 탄도학 문제 척척
비리 장교·납품 담당자 색출
삼성 회장 "한국의 위대한 유산"
지난 1970년 10월 25일 박태준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가 포항제철 항만하역설비를 둘러보기 위해 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지난 1970년 10월 25일 박태준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가 포항제철 항만하역설비를 둘러보기 위해 보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박태준 회장은 6살 어린 나이에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다.

당시 박 회장의 부친은 아들 박태준에게 한 가지 중요한 교육을 시켰다. 그것은 박태준은 박씨 가문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며, 이를 마음 깊이 새기고 일본인과의 모든 경쟁에서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친의 훈시를 명심한 박태준은 불철주야로 공부해 초·중·고에서 성적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주변의 일본 동학들은 박태준을 '지독한 놈'이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지속적인 괴롭힘과 따돌림을 행했다.

물론 일본 학생들만 박태준을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면 박태준이 교내 수영대회에서 1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수영대회를 주관한 체육담당 교사는 대회 기록을 조작했고, 일본 학생에게 1등 자리를 넘겼다. 박태준은 즉각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당일 저녁 집으로 돌아간 박태준은 이 일의 분함을 잊지 못해 밤새 잠을 못 잔 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시 미 공군의 폭격이 일어나는 와중에 방공호로 피신한 박태준은 촛불 아래에서 학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당시 이 모습을 지켜본 주위 한국인들은 박태준에게 "너는 자라서 대한민국의 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각고의 노력 결과 박태준은 일본 3대 명문대학 중 하나이며, 당시 비교적 학비가 저렴했던 와세다 대학 기계학부에 수석 입학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박태준은 귀국한다. 그런데 당시 경제 인프라가 부족했던 한국에서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는 대학에서 기계학을 전공했으나, 엔지니어로서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결국 박태준은 미군정이 세운 단기 장교 육성 학교이자 학비가 무료인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여기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 '멘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박 대통령은 사관학교 교수로 탄도학을 담당하고 있었고, 수업 자리에서 탄도 궤적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생도들에게 풀어 보라고 종종 말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은 생도들에게 또 문제를 냈다. 그렇지만 생도들 중 그 누구도 문제를 풀지 못했다. 어느 생도들도 박 대통령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일명 '수학귀신'으로 일컬어지던 박태준이 손을 번쩍 들고 "제가 풀어 보겠습니다"면서 칠판 앞으로 나아갔다. 문제를 거침없이 술술 풀어내는 박태준을 본 박 대통령은 흡족해했고, 그때부터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박태준은 육군 소위로 임관하자마자 부임지에서 탁월한 군 생활을 이어 갔고, 진급 또한 동기보다 빨랐다.

주지하듯이 박태준 회장은 '청렴'의 상징으로 대한민국 경제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그의 군 시절 일화를 하나 소개해 본다. 일반적으로 동절기에 군인들은 김장을 대량으로 한다. 당시 김장을 하는 현장을 지나가던 박태준은 김치에서 고춧가루 향이 나지 않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고 군인들을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에 김장김치를 넣게 했다. 그러자 양동이 속 물은 빨간색이 없고 맑은 색만 가득했다. 맑은 색 물의 원인은 알고 보니 김치 담당 장교가 30% 분량의 고춧가루만을 사용해 김장을 했기 때문이었다. 김장담당 장교는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고춧가루를 몰래 시장에 팔고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박태준은 크게 분노해 담당 장교를 좌천시키고 그의 월급을 삭감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비리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 관련 납품업체의 비리자를 샅샅이 색출해 납품 담당자들을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은 얼마 안 있어 박정희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갔다. 소식을 들은 박 대통령은 박태준에게 전화를 걸고는 "박 중령, 내가 반드시 시간을 내서 박 중령 부대로 직접 가서 김장김치 시식을 하겠네"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전 편에서 얘기한 것처럼 박태준은 준장 진급 후 '5·16'에 공을 세웠으며, 육군 소장을 끝으로 군대에서 물러난다. 이전부터 그를 눈여겨보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대한중석을 맡기고, 이후에는 포항제철 건설 책임자에 임명한다. 일명 '한강의 기적'의 초석이 이때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11년 12월 14일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은 박태준 회장의 부고 소식을 듣고 조문을 하고는 유가족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을 했다.

"제 생각에는 미국 스티브 잡스의 IT 업계에 대한 공헌보다 청암 박태준 회장께서 한국에 남기신 유산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조부인 이병철 회장은 '너도 성장하면 박태준 같은 인물이 돼라'고 자주 말씀했습니다", "박태준 회장이 있지 않았다면 현재 한국의 모습은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박태준 회장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저명인사가 사망했을 시 사회 각계 대표들이 자발적으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치르는 장례의식으로, 정부가 장례비용 중 일부분을 보조한다. 지금 박태준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1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이처럼 청렴결백한 인생을 산 사람은 그 외에는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기획 연재 박광수 경남매일 논설위원

박광수 경남매일 논설위원
박광수 경남매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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