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4:30 (토)
쓰레기의 합창
쓰레기의 합창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3.09.19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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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거리를 뒹구는 쓰레기는 스산한 바람을 친구로 삼는다. 바람이 쏠리는 쪽으로 쓰레기는 어김없이 몰려가고 서로 부둥켜안고 부질없는 소리를 낸다. 쓰레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한 인간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일은 역사를 통해 봐 왔지만 인간의 이성이 제대로 발전한 현대에서도 한 인간의 어지러움이 세상을 이 정도로 흔들 줄 몰랐다. 한 인간이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허망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사기꾼이 되었다. 지금은 뻔한 사기 행각이 그것도 백주 대낮에 횡행한다. 참 불행한 시대 위에 버티고 사는 모순이 억장을 무너뜨린다.

우리 사회에 신화의 힘을 뿌려 놓은 악마가 매일 웃고 있다. 일말의 진실은 필요 없다. 한쪽 편에 단단하게 속해 깡다구를 부리면 된다. 절대적 잣대를 잃어버린 우리 사회는 봄날 응달에 소소한 잔설을 두고 진실이라고 한다. 햇볕이 살짝 비켜 내려도 한 움큼도 안 되는 진실은 형체도 없이 녹아내릴 게 분명하다. 국회의원의 행태는 우리 사회의 큰 부담이다. 그들이 정부 대질문에서 역사에 남을 말들을 많이 쏟아내 옥석을 가리기가 너무 힘들다. 상대를 오직 죽이는 데 혈안이 돼 있는데 무슨 질문이 필요한가. 신화를 덧씌우고 저주를 퍼부으면 족하다.

황야의 이리는 약한 동물을 찾아 하루 종일 헤맨다. 쓰레기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는 속에서 이리의 탐욕은 거침이 없다. 이리 한 마리의 욕심이 온 동물 세계를 질서를 깨 버려도 아무 상관이 없다. 쓰레기는 서로 부대끼며 응원의 소리만 낼 뿐이다. 요즘처럼 쓰레기가 판치는 때는 없었다. 현재 쓰레기에서 환골탈태해서 다시 쓰레기가 되려고 한다. 잘못하다 쓰레기 그룹에서 떨어지면 큰 낭패를 본다. 그래서 쓰레기로 잘 살기로 한다.

한때 1만 시간의 법칙이 큰 힘을 발휘했다.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들이면 전문가로 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노력의 질을 빼버리면 1만 시간은 단순한 우리의 생활 속 시간에 머물게 된다. 몰입에 가까운 시간 사용도 없이 1만 시간을 흘려보내면 시간은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흘러간 흔적만 새겨놓을 뿐이다. 고정형 사고방식으로 1만 시간을 보내본들 성장하지 않는다. 유지할 뿐이다. 우리 사회는 성장을 멈췄다. 퇴보로 가는 흔적이 뚜렷하다. 뜻을 관철하기 위해 단식을 무기로 내세우는 방식은 너무 고루하다. 무슨 의지를 보이기 위해 곡기를 끊고 인상을 찡그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행위는 그냥 술수라고 해야 한다. 순수한 목적이 있다면 순결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진실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고 진실이 되지 않는다.

갈매기 사회의 이단아인 조나단 리빙스턴은 비행을 향한 열정을 품었다. 더 높이 날기 위해 연습에 몰입한다. 더 높이 날기 위해 삶에 열정을 가하는 행위로 다른 갈매기의 눈에 벗어난다. 리빙스턴이 보인 전통을 깨고 신화의 힘을 무너뜨리려는 자세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갈매기가 찾는 먹이는 낮은 바닷속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삶은 더 숭고한 목적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 리더라는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아예 땅에 처박고 살기를 바란다. 우리가 추구할 더 자유롭고 더 성장하고 더 열정을 가해 살아야 할 이유를 빼앗는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높이 본다'는 화려한 문구는 사치다. 물고기는 낮은 곳에 있다며 비행하려는 욕구를 빼앗는 정치 리더들은 쓰레기일 뿐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한두 명이 우리 사회의 물을 흐리는 일이 일어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시대에 서 있다. 그런 엄청난 일을 자행하는 사람은 정의로워야 한다. 설사 정의롭지는 못해도 지탄받을 행동이 붙어있으면 안 된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있는 시대가 우습다. 태양에 맞서 이기려는 힘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카로스의 날갯짓은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 바다로 추락하기 마련이다. 열심을 다해 허망한 날개를 휘젓지만 결국은 떨어진다. 떨어질 때까지 모르는 게 문제다. 이카루스의 날갯짓을 하는 숱한 쓰레기들이 추락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는 탓일까 요즘 더 시끄럽다.

쓰레기들은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지 못한다. 땅에 내팽개쳐진 정의가 불의와 혼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쓰레기통에서 뒹구는 눈물이다. 사회의 정의를 허물고 공정을 쓰레기통에 넣은 존재가 디케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의의 여신의 이름을 들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단언한다. 정의가 상대적이 되는 사회, 그곳에서 우리는 쓰레기와 산다.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에서 우리의 호흡은 거칠어 있다. 누구의 등에 화살이 꽂힐지, 아마 가짜 정의가 먼저 시위를 당길 것 같다. 쓰레기는 바람에 휩쓸려 더 큰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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