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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택 ⑥
우리의 선택 ⑥
  • 경남매일
  • 승인 2023.09.1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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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한국중공업 사장

북한군은 낙동강 여러 전투에서 이미 전투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약화된 북한군이 퇴로까지 끊겼으니 도망칠 여력도 없었다. 기진맥진한 북한군은 대부분 경상도 산악과 전라도 지리산으로 피했다.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은 무인 지대를 달리는 격이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 드디어 38선을 돌파, 북진을 계속한다. 10월 19일 평양을 탈환하고 10월 26일에는 초산 북쪽의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통일이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10월 25일 이후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전쟁은 뜻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으로 바뀌었다. 30만이 넘는 중공군이 몰래 들어와 북한의 깊숙한 산속에 잠복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국군과 유엔군은 멋도 모르고 압록강을 향해 진격을 계속했다.

11월 초, 잠복했던 중공군은 일제히 밖으로 나와 우군의 퇴로를 끊었다. 혼란에 빠진 국군과 유엔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철수하기에 바빳다. 오호라! 통일을 눈앞에 두고 철수를 하다니! 사실 이때 중공군의 참전만 없었으면 한반도는 통일이 됐을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장진호 전투였다. 장진호 쪽으로 진격한 부대는 미 육군 10군단과 미 해병 1사단이다. 때는 1950년 11월이다. 함경도 장진호 부근은 해발 2000m 가까운 높은 산악지대에다, 10월이면 눈이 내리고, 중강진과 함께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한반도에서 제일 추운 지방이다. 그해는 영하 40℃를 오르내렸다.

장진호에 갇힌 부대는 미 해병 1사단, 미 7사단 2개 연대, 영국 해병 1개 대대 등, 3만여 명이 중공군 9병단(3개 군단) 12만 명에 의해 포위됐다.

미 해병사단의 지휘관은 스미스(Oliver Smith) 소장. 그는 11월 27일부터 2주간 전사 상 가장 힘든 철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자신도 살아 돌아왔다. 그는 사단사령부가 있던 함경북도 하갈우리의 비행장을 이용해 비행기로 사단사령부를 안전한 후방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는 부상자와 전사자들을 우선 철수시켰다. 그는 마지막까지 병사들과 함께 포위를 뚫고 홍남까지 빠져나왔다.

동서남북의 모든 산은 중공군이 점령했다. 길이란 길은 모두 막혔다. 활로는 남쪽으로 난 국도뿐이다. 사단장은 국도를 따라 혈로를 뚫기 시작했다. "후퇴하는 겁니까?" 누가 물었다. "후퇴? 웃기지 마라. 우리는 전진한다. 방향만 반대일뿐이다!" 사단장의 답변이다.

포위를 뚫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포위망을 돌파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장비, 부상병, 전사자까지도 데리고 갈 것이다."

그는 실제로 가용한 비행기로 부상자와 전사자를 최대한 회수해서 먼저 철수시켰다. 전사자를 방기(放棄)하지 않는 것은 미 해병대의 전통이다. 그리고 자신은 병사들과 함께 포위망을 뚫고 내려왔다.

철수 작전은 성공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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