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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펭귄의 허들링
황제펭귄의 허들링
  • 경남매일
  • 승인 2023.09.13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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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펭귄은 생존을 위해서 바다에 나가 먹이사냥을 해야 하지만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바다표범이나 범고래 같은 천적 때문이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용감한 펭귄 한 마리가 바다에 뛰어들면 나머지 펭귄들도 공포를 이겨내고 뒤따라 바다에 뛰어든다. 무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기업이나 사람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황제펭귄'(Emperor Penguin)은 18종의 펭귄류 가운데 몸이 가장 큰 종이다. 몸길이가 100~130㎝, 몸무게가 20~40㎏이나 된다. 다른 모든 펭귄류들은 겨울이 오면 남극을 떠나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바다를 찾아가지만, 황제펭귄은 남극에 남아 극한의 추위를 견딘다. 남극은 겨울이 오면 온도가 영하 40℃까지 떨어지고, 바람은 시속 140㎞가 넘는 곳이다. 불교의 팔한지옥(八寒地獄)이 있다면 여기가 그곳이다.

황제펭귄은 3월 말에서 4월경 번식지에 도착해 5월~6월 암컷이 하나의 알만 낳는다. 알은 8월경에 부화하는데, 수컷은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약 65일간 발 위에 있는 주머니에 넣어 알을 품는다. 암컷이 알을 낳고 먹이를 몸에 비축하기 위해 100여㎞나 멀리 떨어진 바다로 떠나면 수컷은 2~4개월 동안 수분 섭취를 위해 눈을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수컷 펭귄은 알에서 태어난 새끼들에게 4개월간 위 속에 간직했던 물고기를 먹인다.

극한의 추위에 맞서 알을 품고 있는 수백 마리의 수컷들은 서로 몸을 밀착하고 천천히 주위를 돌다가 바깥쪽에 서 있는 개체가 체온이 낮아지면 안쪽에 있는 개체와 자리를 바꾸면서 전체 집단의 체온을 계속 유지하는데, 이를 허들링(Huddling)이라고 한다. 바람막이 역할을 하며 추위에 떨던 바깥의 펭귄들은 대열의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인다. 영하 40℃의 남극에서, 황제펭귄들은 허들링을 통해 자신들의 체온(37.5℃)을 지켜낸다. 수컷 황제펭귄의 몸무게는 40㎏에서 절반가량이나 줄어들 때 비로소 암컷이 돌아오고 서로 임무를 교대한다.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12월부터 다음 해 1월이 돼야 검은 방수 깃털을 갖추고 헤엄칠 정도로 자라나는데 그 전에 물에 빠지면 익사하거나 털이 젖어서 동사한다. 펭귄이 번식에 성공하려면 4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얼음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 BBC에 의하면 지난해 황제펭귄의 서식지인 남극 해빙이 급격하게 녹으면서 1만 마리 가까이 새끼 펭귄들이 죽었다고 한다(2023.8.25.). 영국 남극연구소(BAS) 피터 프렛웰(Peter Fretwell) 박사팀은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후, 과학저널 '커뮤니케이션스 지구&환경'에 남극 벨링하우젠해 중부와 동부에 있는 황제펭귄 서식지 5곳 중 4곳에서 지난해 얼음이 사라지면서 새끼들이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한 것으로 보고했다. 프렛웰 박사 연구진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2100년대 말이면 황제펭귄의 90%가 번식에 실패해 사실상 멸종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감동을 주는 황제펭귄이 사라진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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