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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택 ⑤
우리의 선택 ⑤
  • 경남매일
  • 승인 2023.09.1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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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한국중공업 사장

미군은 죽미령에서만 밀린 게 아니라 24사단 본대도 대전 전투에서 크게 패해 사단장 딘(William Dean) 소장이 포로가 됐다.

세계 최강이라던 미군이 왜 이 모양인가? 미국의 정책 실패다. 2차 대전에서 일본에 시달린 미국은 전쟁에 몸서리쳤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1200만이던 병력을 200만으로 줄였다. 국방부도 전쟁 준비를 소홀히 했고, 국민 정서도 편하게 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젊은이들을 전보다 더 향락에 빠지게 했던 것은, 미국이 전쟁에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미군의 눈에는 일본은 미친놈이었다. 전쟁 초기에 미국 군인은 일본군과 싸우면서 정신을 못 차렸다. 왜? 상대가 상식에 벗어나는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옥쇄(玉碎, 전원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는 미군 전술에 없다. 정상 작전이 안 될 정도로 전투능력이 없어지면 항복하는 게 미군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마지막까지 싸우라는 명령이 있으면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운다. 그런데 일본군은 매번 옥쇄다. 사람 목숨을 너무 가볍게 보는 데 미군은 당황했다. 특히 '가미카제(神風) 특공' 같은 것은 전술로 안 쳐준다. 미군의 상식으로는 사람은 무기를 사용하는 존재이지, 자기 몸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전투기를 몰고 그대로 전함에 꽂는다? 말이 안 된다. 비행기를 잘 몰아서 폭탄으로 때려야지! 이런 문화적 차이는 미군을 놀라게 했고 피곤하게 했다. 그것도 5년 동안이나. God Dam, Jap! 몸서리가 났다.

6·25전쟁, 한국에 온 미군은 일본 주둔군이었다. 대부분이 18세 전후 청년들로 전쟁을 모르는 세대다. 장교들도 병사들 훈련에 소홀했다. 전후 미국의 분위기가 그랬다. 평화로운 일본에서 얼마나 놀기 좋았겠나. 훈련보다 일과 후 카바레나 바에서 춤추고 술 마시는 게 일이었을 것이다.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반도에 왔다. 당시 기록을 보면 군인들은 피크닉 가는 기분으로 출동했다고 돼 있다. 상대가 어떤 군대인지, 무기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는 알고 와야지. 심하게 말하면 가라니까 그냥 온 거다. 왜? 기록에는 미군이 보이기만 해도 북한군은 도망치기 바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북한군은 전차를 중심으로 잘 훈련된 정예군인데, 대전차 무기도 갖추지 않고 참전하다니! 전쟁 초기에 미군이 참패를 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오만의 결과다.

8월까지 미군은 계속 밀려 낙동강 교두보로 고착됐다. 포항-영천-대구-창녕을 연결하는 사다리꼴 모양의 옹색한 교두보다.

낙동강에서의 전투는 치열했다. 미군은 열세한 병력으로도 교두보를 끝까지 확보했다. 미 8군 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장군의 유명한 명령 'Stand or Die-죽을 때까지 벼텨라'도 이때 얘기다.

9월 15일, 맥아더는 인천 상륙을 단행, 일거에 북한군을 패주시켰다. 패주가 아니라 사실상 북한군의 와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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