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0:25 (일)
킹크랩은 게가 아니다?
킹크랩은 게가 아니다?
  • 경남매일
  • 승인 2023.09.06 22: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토마토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과거에 미국에서 있었다. 당시 뉴욕주는 수입 채소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에 토마토를 수입하던 사업자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토마토가 채소가 아니라 과일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국의 미연방 대법원은 ‘식물학적 견지에서 보면 토마토는 덩굴식물의 열매이므로 과일이다. 그러나 토마토는 밥 먹은 후에 먹는 후식으로 식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식사의 중요한 일부이므로 채소다.’라는 희대의 판결을 내렸다(Nix v. Hedden, the U.S. Supreme Court, 1893). 

인류가 살아오면서 오랜 기간 편의상,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는 것과 학자들이 식물계통분류학에서 구분해 놓은 것은 확실히 다르다. 어쨌든 판사는 ‘식물학적으로 과일(botanically fruit)’이라고 했으니 토마토는 과학적으로 과일인 셈이다. 그러나 관세를 피하지 못하도록 ‘법률적으로는 채소(legally vegetable)’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근거가 된 1883년 관세법은 이후 여러 번 개정되었으나 판례법 위주의 미국법 체계상 토마토는 여전히 ‘법률적으로’ 채소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토마토는 채소에 맞춘 기준 관세가 부과된다. 

과학과 사회통념이 일치하는 않는 것 중, 재미있는 수산물을 하나 꼽아보라면 킹크랩이다. 킹크랩(King crab)은 영덕대게와 유사하게 생겼고, 영어 이름도 crab(게)이지만 게가 아니라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게’가 아니라 ‘집게’이다. 두 게의 눈에 띄는 차이점은 다리 개수인데, 대게는 10개지만 킹크랩은 8개다. 

집게는 게 아닌가? 둘은 과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개체다. 집게는 고둥껍데기를 쓰고 다니는 ‘소라게’나 열대지방 야자나무에서 발견되는 ‘야자집게(Coconut Crab)’ 같은 것으로 게와는 약 2억 년 전인 트라이아스기(Triassic Period)에 분화되었다. 그러나 진화의 과정 중 유사하게 닮아가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를 통해 비슷하게 닮게 되었다. 마치 물고기와 고래, 새와 박쥐가 유사해진 것과 같다. 

게와 집게는 절지동물문(Arthropoda) - 십각목(Decapoda)에서 범배아목(Pleocyemata)이라는 분류군에 속한다.? 범배아목은 다시 단미하목(Brachyura), 집게하목(Anomura)으로 갈라진다. 단미하목은 모든 게가 속하는 분류군이며, 집게는 집게하목에 속한다. 

게가 아닌 다른 절지동물들이 게와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한 것을 게화(Carcinisation)라고 한다. 이 개념은 1916년 영국의 생물학자 보라데일(L.A. Borradaile)이 처음 제시했다. 이 게화라는 것은 꼬리가 짧아지고 복부와 얼굴을 구성하는 갑각이 짧아지고 넓어지면서 게처럼 변해가는 수렴진화를 말한다.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는 소비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요리든 후식이든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된다. 킹크랩도 마찬가지다. 다리 개수 말고는 생긴 것도, 맛도 대게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사회통념과 전혀 다른 과학적 사실들이 어색한 분위기를 무너뜨리는 스몰토크(Small Talk)로써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