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0:52 (토)
이유식을 시작한 손녀에게
이유식을 시작한 손녀에게
  • 경남매일
  • 승인 2023.08.31 2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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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가락김해시종친회 사무국장
김병기 가락김해시종친회 사무국장

아내가 보내준 동영상을 보았다. 막 젖을 뗀 둘째 손녀에게 이유식을 먹이는데 표정이 묘하다. 며느리는 미리 처음 먹는 이유식을 먹지 않으려는 것을 알기에 먼저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조심스레 이유식을 건넨다. 입술을 앙다물고 쳐다보다가 할 수 없이 입은 연다. 건네는 이유식이 맛이 없는지 인상을 오만가지로 찌푸리며 푸우하며 뱉어낸다.

팔십 평생 농사일을 거들며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오신 어머님께서 마지막 투병을 하실 때, 반찬이 아무런 맛이 없다며 젓가락을 헤집으며 던지던 모습이 아련하다. 그때 어머님 얼굴 모습이 손녀의 얼굴에 겹친다. 놀라서 옆에 있는 아내에게 "손녀 모습이 어머님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보라고 하였다. 어머님 모습이랑 똑같음에 아내도 놀란다.

우린 돌고 도는 억겁의 시간 속에 산다고 하였는데,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다음 생에 내 딸로 태어난다면, 어머님의 그 깊고 높은 은혜를 보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인지 몰라도, 귀한 인연이 찾아왔음은 자명하다. 먹지 않으려는 이유식을 몇 번이고 먹여도 손녀는 끝내 뱉어낸다. 뱉어내면서도 미안한지 오만상을 찌푸리다가 해맑게 배시시 웃는다.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각각이기에 사물을 대하는 생각도 천차만별이고, 죽음을 앞두고는 누구나 자유로울 수가 없다. 길 가로수마다 붙은 매미는 마지막 여름을 붙잡기 위해 온 몸부림으로 울음을 토한다. 요즘 들어 주변 누구는 허리가 고장이 나고, 다른 누구는 무릎이 이상해 병원에 입원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았는데 길을 나서니 두렵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죽음을 앞두고, 맨 먼저 부인하다가 분노에 거래하고 어느 순간 우울해하다가 끝내 수용하며 다시 태어남을 꿈꾼다고 한다. 이유식을 막 시작하는 손녀야! 태어남이 괴로움(苦)이라 하지만, 비 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더 많단다. 맛없음을 알았다면 언젠가 맛있음도 알게 될 것이기에 천천히 가만가만히 받아들여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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