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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택 ②
우리의 선택 ②
  • 경남매일
  • 승인 2023.08.2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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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미국과 동맹 강화 가. 해방 전후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손을 들었다. 나라는 거덜이 나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국토는 쑥대밭이 됐다. 국민이 지도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누구 원망할 것도 없다. 다 자기 탓이다. 그런데 우리는 `해방`이란 대박이 터졌다.

누가 시켰냐? 미국이다. 우리가 해방을 쟁취한 게 아니다. 미국 젊은이들이 태평양에서만 16만 명이 죽고 25만 명이 다쳤다.

그런데 몰라서 그렇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때 조선은 20~30년 국제연합의 신탁 통치를 한다는 말이 돌았다. 그런데 장제스의 반대로 겨우 면했다. 장제스는 우리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많이 도운 사람이다. 장제스는 대인(大人)이다. 우리한테도 잘했지만, 강화조약 때 일본에 대한 배상을 철회한 사람이다.

혹자는 미국이 38선을 만들어 우리가 분닫국이 됐다고 한다. 아니다. 원래 소련은 한반도를 오래전부터 탐내온 나라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소련 주재 미 대사 해리먼(William A. Harriman)은 새로 취임한 트루먼 대통령에게 소련이 한반도에 야심이 있으니 조기에 한반도와 만주를 점령할 것을 건의했으나 당시 미국은 필리핀에서 일본과 교전 중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월 9일, 러시아군은 일로(日露) 불가침 조약을 무시하고 노도같이 밀고 내려와 단숨에 만주를 석권하고 북한까지 점령했다. 그때 미군이 진출한 선은 오키나와다. 한국에 보낼 수 있는 가용 병력은 필리핀에 있었다. 한국까지 올 틈이 없었다. 그 전에 38선을 안 그어 놓았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

해방 후 나라는 정말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알 수 없는 혼란기였다. 해방은 우리가 쟁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을 운영할 능력도 없었다. 그나마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의 잔재인 공무원들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나 좌익을 걸핏하면 남한이 친일파 정부라고 비난하지만, 김일성은 한때 남한보다 더 많은 친일파를 썼다.

친일파? 웃기는 소리다. 내 부모는 당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가 없어졌다. 1935년, 나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나와 보니 일본이 통치했다. 일본 말도 배우고, 철들 때까지 일본이 내 나라인 줄 알고 살았다. 사람은 부모나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가? 나고 죽는 것, 부모나 나라는 다 팔자소관이다. 신의 뜻이다. 동족을 해코지한 사람은 나쁘다. 그놈이 친일파지.

나라는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지도자도 없고,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능력도 없었다. 조직도 부실했고, 목표도 불확실했다. 그 가운데 유일한 조직은 국제 공산당과 이들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 일당뿐. 혼란기를 틈타 군인은 반란을 일으켰다. 좌익은 기회만 있으면 소요와 폭동을 일삼았다. 1946년 10월 대구폭동사건, 1948년 4월 제주 4ㆍ3사건, 1948년 10월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등 모두가 이 시기 공산주의자들의 사주로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사이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들만 죽어 나갔다. 좌익은 어느 시대나 정말 문제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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