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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릇으로 깨달은 허운 스님
주인 노릇으로 깨달은 허운 스님
  • 경남매일
  • 승인 2023.08.1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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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1949년 여름, 홍콩 반야정사의 법당 점안식에 당시 중국 최고의 선승인 110세의 허운(虛雲)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 수만 명이 모였다. 성황리에 법회가 끝나고 불사금도 당시 돈으로 3억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허운 스님은 이 돈을 빈민들과 스러져가는 사찰들을 위해 쓸 것을 당부했다. 스승의 뜻을 받들기로 하면서 제자들과 신자들이 공산화된 중국에 가면 위험하니까 홍콩에 머물면서 불법을 전해 달라고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나 개인적으로는 머무르고 떠나는 것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어디든 고향이요. 짐을 푸는 그곳이 도량이지요. 지금 중국의 사찰들은 모두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고, 수많은 승려와 불교도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비록 미력하더라도 고난에 처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야지요. 죽더라도 중국의 불교도들과 생사를 함께 할 생각입니다. 해외 포교는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께 부탁드립니다." 허운 스님은 시자도 남겨둔 채 중국으로 돌아갔다.

곳곳에서 출가자들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고 적지 않은 스님들이 한국의 6ㆍ25 전쟁에 투입되었다. 1951년 봄에는 스님이 머물던 운문사에도 피바람이 불어왔다. 전각과 불상이 파괴되고 승려들은 끌려가거나 살해되었다. 스님도 쇠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맞고 9일간 죽음의 경계를 헤매야 했다.

스님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제자들과 불자들이 구명운동을 하였다. 당시의 로마 교황과 각국의 종교 지도자들ㆍ태국 국왕ㆍ인도 네루 수상ㆍ베트남 총리 등이 허운 스님의 구명과 석방을 모택동에게 요구하였다. 이에 모택동은 석방하면서 스님을 중국불교협회 초대 회장으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모택동에게 종교탄압을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스님은 공산정권의 끊임없는 감시하에서도 승가를 보호하고 수십 곳의 가람을 복원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계를 주어 불문에 귀의토록 했다. 폭력과 살육에 맞서 자비와 인내로 맞설 것을 당부하면서 염불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공산당의 자아비판 요구에 "부처님의 대자비를 널리 알리지 못해 부끄럽고, 많은 중생들의 고통을 돕지 못한 채 늙어 부끄러우며, 지금 화남 지방에는 큰 수해가 발생해 모두 기근에 시달림에도 돕지 못함이 죄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120번째 생일이 지난 1959년 10월 13일, "계정혜를 부지런히 닦고 탐진치를 소멸하라. 도량을 보존하고 사원의 청규를 지키려면 오직 한 글자뿐이니 바로 계(戒)다."란 말씀을 남기고 부처님께서 그랬듯이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댄 채로 입적하셨다.

허운 스님은 동굴에서 6년간 풀과 솔잎, 약간의 곡식으로 연명하면서 손가락을 태워 깨달음을 얻고자 할 정도로 철저한 수행을 했다.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위해 4000㎞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3년간 삼보일배로 완주하기도 했다.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곤명 인민들을 위해 3일간 기우제를 드려 단비를 내리게 했고, 온갖 동물들과도 소통하여 온화한 자비로 불법에 귀의토록 한 도인이었다.

허운 스님은 "젊을 때부터 참선을 통해 도를 배우라"면서 "무슨 일을 하던 늘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주인 노릇을 잘할 수 있으려면 평상시에 억지로라도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도를 깨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사심이 간절하고, 오래도록 견고하게 도를 향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지니면 가능합니다. 금생에 물러서지 않으면 비록 깨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생에 다시 노력하게 되니, 어찌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힘써 정진하고 참회심과 견고심을 내어 한 문에 깊이 들어가야 수행이 됩니다."

주인정신을 지니고 역사와 현상을 보고 주인노릇을 하면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삶이 가치 있는 삶임을 보여준 분이 허운스님이다.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주인이 되어 가치 있는 깨달음의 삶이 되려면 식민교육에서 비롯된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함을 허운스님의 삶이 알게 한다.

독립운동사 발간을 막고 식민사학 비판 도서 발간을 금지한 일이 문재인 정권에서도 일어난 것은 식민사학 카르텔이 진보와 보수정권 가리지 않고 기생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를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으나 자신이 임명한 진보사학자인 안병욱이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하면서 독립운동사 발간을 막고 식민사학 비판 도서 발간을 막는 만행 등에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이를 묵인 방조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도 교체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였다.

윤석열 정권도 뉴라이트를 등용하면 유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주류고대사학계와 진보사학ㆍ뉴라이트는 식민사학 카르텔에 연류된 부류가 적지 않다. 물론 진보사학자와 고대사학자 중에는 식민사학 카르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훌륭한 분들도 있다.

잘못된 역사관을 지닌 사람들이 국가지도자나 관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식민사학 카르텔에 휘둘리는 정권에는 역사촛불을 들어야 하겠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 우리 역사는 우리가 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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