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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단군은 만들어낸 이야기일까
  • 경남매일
  • 승인 2023.07.2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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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식민사학 카르텔에 의한 단군 교육으로 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이 피탈되기 전인 대한제국의 역사교과서를 보면 단군은 실존 인물이다. 사대모화의 관점에서 기자가 평양에 왔다고 잘못 인식하여 반도사관으로 역사를 본 조선시대의 유학자들도 단군은 실존 인물로 인식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에서 만든 역사교과서인 <대한역사>에는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을 낳고, 환웅이 왕검(王儉)을 낳았다. 왕검이 성스러운 덕(聖德)을 지녀서 왕으로 삼으니 단군이 되었다. 나라 이름을 가장 먼저 아침 해를 받아 빛난다는 까닭에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원년(元年)은 요(堯)임금 25년이고, 융희(隆熙) 원년(1907)으로부터 4240년 전이다. 비로소 백성을 교화하여 머리를 묶어 덮었으며 왕과 신하, 남녀의 음식과 거처의 제도를 갖추었다."

이어서 2대 단군이 되는 태자(太子) 부루(扶婁)를 도산(塗山)에 보내 하(夏)나라의 임금인 우씨(禹氏)의 만국회(萬國會)에 참석하도록 하였다. 왕자 3명을 강화 전등산으로 보내 삼랑성(三郞城)을 쌓았다.

처음 평양에 도읍하였다가 이후에 백악(白岳)으로 옮겼다. 팽오(彭吳)에게 명령하여 국내 산천에 제사를 올렸다. 단군의 후손이 왕위를 서로 이어간 지 1212년에 기자에게 양위하고 북부여로 옮겼다가 이후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부`의 기사를 보면 단군의 어머니는 상제(上帝)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단웅천왕(檀雄天王)의 손녀다. 단군의 부인은 비서갑(非西岬) 하백(河伯)의 딸이고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ㆍ북옥저(南北沃沮), 동ㆍ북 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 등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신화는 사실보다 진실을 말하는데 목적이 있다. 사실을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면 진실은 있었다고 여겨지는 일이다. 여겨진다는 것은 해석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글자가 없었던 시절은 사실이 말로 전해 지면서 신화가 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는 의미있는 진실이며 신앙의 절대적 진리다. 기록이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는 사실기록보다 진실이 우선하여 전래되어 과거 사실의 객관적 전달보다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둘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마니시 류는 단군 신화라는 말보다 단군 설화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신화로서 예수의 부활처럼 민족의 시조로 살아날까봐 우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단군이란 인물은 없었고 후대에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하였다. 이병도도 이런 관점에서 설화라고 하였다. 이 식민학설이 이기백과 김철준, 노태돈 등으로 이어지고 송호정에 이르러 <단군, 만들어진 신화> 라는 책이 나왔다.

정말 단군은 없었고 만들어 낸 이야기일까? 중국 역사서에도 단군조선은 역사로 나온다. 그래서 프랑스인 레지신부가 중국의 정사(正史)를 보고 단군조선을 언급하면서 단군조선과 하ㆍ상ㆍ주 나라와의 교류와 전쟁을 역사로 다룬 책을 냈다.

고려시대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도 단군은 신화나 설화가 아닌 역사로 서술되고 있다. 삼국유사도 중국의 위서(魏書)를 인용하여 실존했던 인물로 전해오는 단군을 서술하였다. 일연스님이 단군신화를 만든 것이 아님은 이보다 약 1,1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 산동성 무씨 사당 화상석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대몽항쟁기에 만들어졌다고 왜곡된 역사교육을 하였다. 자세한 것은 YouTube에서 오순제 교수의 신화에서 역사로 1부 - `산동 무씨묘에서 나온 환웅신화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에 `고시래`의 연원도 나온다.

중국 요하의 홍산문화 우하량의 여신묘에서 곰의 턱뼈와 진흙으로 만든 곰의 발도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제사장으로 보이는 인골은 곰의 얼굴을 형상화한 웅룡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이는 홍산인들이 여신과 함께 곰을 숭배하는 곰 토템족이었다는 증거다. 우리 민족의 기원인 단군을 사실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홍산인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2021년 11월, 세계최고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실렸다. 이 논문은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의 마르티너 로베이츠(Martine Robbeets) 교수 연구팀을 중심으로 10개국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언어의 연관성ㆍ역사유물과 유적ㆍDNA 분석 등 언어학ㆍ고고학ㆍ유전생물학 분야를 종합한 대규모 공동 연구 결과다. 이 연구 결과 한국인은 요하문명 사람들과 깊은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진서로 규명된 규원사화에는 47대 단군명과 그 치적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식민사학이 없는 북한 역사학계는 규원사화를 정사(正史)로 인정하여 47대 단군을 역사화하였다.

단군이 신화나 설화로 인식된 것은 식민사관과 식민교육에 의한 것으로 이마니시 류가 식민사관에 따라 실존하지 않았던 설화로 서술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해방후 식민사학 카르텔에 의하여 이어져 왔다. 극일이 되려면 이제 이런 식민잔재는 극복되어야 한다.

고대사학계는 식민사학 카르텔로 자신들의 학문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언제쯤 식민사학 카르텔을 극복하여 역사주권과 영토주권을 확립하여 극일과 극중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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