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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사불벌죄와 처벌불원의 주체
반의사불벌죄와 처벌불원의 주체
  • 경남매일
  • 승인 2023.07.1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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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복 변호사
김주복 변호사

우리 형법에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가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그 의사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는 범죄이다. 형법상 폭행죄, 협박죄, 명예훼손죄 등이 이에 해당한다. 피해자의 합의서 또는 처벌불원서가 접수되면, 수사단계에서는 무혐의(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고, 1심 재판단계에서는 공소기각판결이 선고된다. 이러한 형사 절차상 장점을 이용하기 위해 가해자(피의자 또는 피고인)는 피해자로부터 합의서나 처벌불원서를 받아 내려고 간혹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스토킹처벌법위반 사건과 관련하여 가해자가 합의서나 처벌불원서를 받아 내려고 제2의 스토킹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더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피해자인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피해자가 유아나 어린이,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자인 경우에는 피해자가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할 만큼의 사리분별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법정대리인인 부모나 후견인이 피해자를 대신하여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게 되면, 형사법적인 효력이 있을까? 이에 관하여, 최근 대법원(2021도11126 전원합의체판결)은,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 대한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다수의견)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에서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데, 법문언상 공소제기 여부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달려있음이 명백하다.

②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나 형법, 형사소송법에는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의 대리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③반의사불벌죄는 일부 범죄에 관하여 피해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형사사법절차에 관한 사인의 개입을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인데, 그 예외를 명시적 근거 없이 확대하게 되면 형사법의 보호적 기능이 약화되고 국가형벌권이 불공평하게 행사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④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 형사소송절차에서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까지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를 비롯한 형사사법이 추구하는 보호적 기능의 구현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에 역행한다.

⑤민법상의 성년후견인이 형사소송절차에서 반의사불벌죄의 처벌불원 의사표시까지도 대리할 수 있다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피해자 본인을 위한 후견적 역할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성년후견인의 법정대리권 범위에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포함돼 있거나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다수의견과 달리 5명 대법관의 반대의견도 있었는데,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피해자가 의사능력을 결여한 경우, 형사소송법 제26조의 유추적용과 성년후견제도의 활용을 통해 가정법원이 선임한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반의사불벌죄에 관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②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를 허용하는 것이 성년후견제도를 새롭게 도입하여 의사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사람을 지원ㆍ보완하려는 입법 취지에도 부합하는 해석이다.

생각건대, 법률의 문언, 형사법의 목적, 반의사불벌죄의 취지, 성년후견제도와 형사소송절차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의사는 원칙적으로 피해자 본인만이 가능하고, 성년후견인에 의한 대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다수의견)이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성년후견인에 의한 처벌불원의사를 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이나 새로 도입된 형사공탁제도의 취지 등을 고려하면,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리해서 진행한 형사합의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될 수 있고, 이것은 현행 형사사법 체계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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