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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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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매일
  • 승인 2023.06.1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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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재 김해시 정책특별보좌관
하성재 김해시 정책특별보좌관

정보가 모든 사회의 가치를 지배한다는 `정보화 사회`라는 말은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사회가 정보를 제아무리 강조한다 하더라도, 기술의 발전 없이는 정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분명 기술이 지배하는 기술 사회다. 그런데 기술 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술과 기술의 사용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커지게 된다.

미국 스타트업 `오픈AI`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챗GPT는 요즘 압도적인 화젯거리이다. 미국 의사고시, 변호사시험, 경영학석사(MBA) 등 전문직 시험도 통과하고 석사 수준의 논문, 의회 연설문도 척척 써낸다는 무용담이 흘러넘친다. 반면에 세계적인 역사 문화학자 유발 하라리가 챗GPT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고, 챗GPT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미라 무라티가 2023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AI가 사실을 꾸며낼 수 있다"고 하면서, 지금부터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동전에는 양면이 있듯이 기술의 발전은 기술의 본질적 특성상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함께 안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유익과 폐해를 동시에 경험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테크노피아`나 `첨단 기술 사회` 등의 단어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장밋빛 희망만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리더들에게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조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를 구하라`의 저자인 로버트 라이시(경제학자이자 전 미국 노동부 장관)는 또 다른 저서 `부유한 노예`에서 `신경제`의 빛과 그늘을 짚어보며 균형 잡힌 사회와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질문을 단순하다. "당신은 지금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가? 삶을 꾸려가고 있는가?"이다. 그는 오늘날 신경제 속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것과 삶을 꾸려가는 것,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지에 관해 다룬다. 신경제의 풍요 이면에는 가족의 붕괴와 지역 사회의 분화, 하루의 대부분을 생계를 위한 일에 바치고 있는 모습, 즉 부유한 노예라는 그늘이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풍요한 신경제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마이크로칩이나 PC, 인터넷 등이 존재하지 않던 몇십 년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리고 있으며 일이 아닌 삶을 위해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로버트 라이시는 클린턴이 대통령에 첫 당선되었을 때 경제정책 인수팀을 이끌다가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해서 한창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돌연 장관직을 그만두고 가정으로 돌아간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장관직을 맡고 있을 때에는 일이 내 삶의 전부였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 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성공적인 삶의 척도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나 가지고 있는 재산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삶의 균형"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DINS`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DINS (double income, no sex)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침대에서 잠자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못 할 정도로 항상 피곤에 절어 있는 맞벌이 부부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더 필사적으로, 더 불안해하며, 더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하는 `풍요의 그늘`에서 우리는 과거보다 더 가난해졌다. 하루의 대부분을 생계를 위한 일에 바치고 있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또 생계를 위해 가족, 친구, 지역사회라는 수많은 관계를 조금씩은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면 `신의`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 끊임없이 일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자꾸 높아지고 있으며 수입 감소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돌연 노동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라이시가 생각한 성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우리의 정신적 발판, 관계의 풍성함, 무너지지 않는 가족, 통합된 지역사회"라고 답한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무엇인가 더 큰 것을 잃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없다. 라이시의 말대로 리더인 우리 역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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