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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지도
삼례지도
  • 이광수
  • 승인 2023.06.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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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얼마 전 초등학교 동기 동창생과 안부 전화 중 종묘대제(宗廟大祭)에 참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의 관향은 조선 왕족 전주이씨다. 이조 9대 성종 임금의 후계로서 춘계종묘대제에 참례하여 아헌관(亞獻官)으로 진작(進爵)향사(享祀)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후족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례순서에 따라 웅장한 종묘제례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숭조경모(崇祖敬慕)의 제예를 봉행했으니 후손 된 도리를 다한 셈이다.

종묘대제는 유네스코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차제에 점점 잊혀 가는 우리 전통예절의 근본이 된 삼례지도(三禮之道)를 상고(詳考)해 본다. 예로부터 중국은 조선을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그러나 서양의 물질문명이 유입되면서 예의와 도덕이 땅에 떨어져 무례와 후안무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고유의 전통 예절과 도덕은 소멸되지 않고 국민들의 의식 저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비록 시대변화에 따라 퇴색되긴 했지만 군군신신부부자자(郡君臣臣父父子子)가 엄존하여 예의범절을 존숭하고 막장 패륜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예의 근본정신이 영영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다.

예의 교과서 격인 삼례(三禮)에 대해 알아보자. 삼례란 <예기(禮記)> <주례(周禮> <의례(儀禮)>를 말한다. 모두 동양고전의 백미(白眉)인 13경(十三經)에 속하며 유교경전의 핵심이자 동양문화의 진수이다. 삼례의 으뜸인 <예기>는 사서오경의 하나로 49편이었으나 주자에 의해 대학과 중용이 사서로 분리되어 따로 편제되면서 47편이 되었다.

<예기>는 공자의 제자들이 예를 배우기 위해 예문의 의의를 잡기(雜記)한 것이다. 그 내용이 잡다하여 여러 방면에 걸치고 있는데 한나라 때 대성이 취사선택 편집해 오늘에 전한다. <예기>는 통론, 제도, 명당, 음양기, 상복, 세자법, 자법, 제사, 길례, 길사, 악기로 편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이며, 백제가 일본에 전파하였다. 고려시대는 숭불정책으로 흥기하지 못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숭유정책으로 크게 흥성해 <사례편람>을 만들어 백성들의 실생활에 접목해 예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우암 송시열과 미수 허목의 `예송논쟁`에서 보듯이 조선의 망국 지병인 붕당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상수역의 대가 정현이 주(注)를 달아 해설했다.

<주례(周禮)>는 전한 시기부터 청대까지 그 명칭과 저자, 저작 시기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역시 13경에 속하는 <주례>는 상수역학자 정현(鄭玄)이 주를 달고 가공언(賈公彦)이 소를 단 <주례주소(周禮注疏)>가 보편적인 삼례서로 통한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예문지`에는 `주관례`(周冠禮)로 기록하고 있다. 정현은 주공이 <주례>의 저자라고 했지만 유향의 <국어>와 관중의 <관자>에는 제나라 사람의 저작으로 보고 있다. 다른 중국 고전이 그렇듯이 누대를 거치면서 후대 유학자들이나 군주의 통치철학에 따라 수정 첨삭된 것으로 보인다.

<주례>는 천관총재(天官?宰), 지관사도(地官司徒), 춘관종백(春官宗伯), 하관사마(夏官司馬), 추관사관(秋官司官),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의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관(六官)의 명칭은 천지와 춘하추동 사계절의 자연법칙을 본뜬 것이다. 이는 국가통치제도의 근간으로서 주례의 왕은 중앙정부 육관의 설계자이며, 그 수장들인 3공 6경을 임명해 산하속관을 거느리는 행정 체제이다.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관제이고 경제사회문화교육 등의 각종 제도와 문물을 총괄하는 국가의 전장(典章) 제도를 예로써 인식하여 지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래 조선조까지 유교적 이념으로 수용해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의례(儀禮)>는 역시 정현의 주에 가공언이 소를 단 것이 통설이 되었다. 정현이 <의례>의 저자는 주나라 주공이라고 한 것을 <흠정사고전서총목>에서도 명기하고 있다. <의례>는 여러 판본이 있으나 실기된 판본도 많아 정현이 주석을 단 판본이 정석이다. <의례>는 <사관례(士冠禮)>와 <사혼례(士婚禮)>로 편제되어 있다. <사관례>는 어린이가 성장해서 자립하는 나이에 성인으로 인정받는 의례인 성인 의식이다. 이 의례를 통해서 자립 의식을 키운다는 점에서 중요시해 왔다.

<사혼례>는 관례를 치러 성인이 된 사람이 혼례를 통해 한 가정을 구성하는 절차와 규범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혼례문헌이다. 혼례를 치르기 전 신랑과 신부 양가에서 주고받는 인사와 절차부터 혼례를 치르고 난 뒤 시부모 봉양의 절차까지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혼사가 인륜지대사임을 생각하면 폄하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비혼을 고수하고, 혼례도 치르지 않은 채 동거하며, 이혼을 식은 죽 먹듯이 하는 것이 사람 된 바른 도리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한국인은 한국식으로 사는 게 옳지 않겠는가. 앞서 말한 삼례가 공허한 소리로만 들린다면 유구무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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