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09:44 (금)
가난의 정치학
가난의 정치학
  • 김은일
  • 승인 2023.05.30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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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코스프레의 역겨움
`돈에 진심`인 그들의 배신
`나는 부자 너희는 가난` 분노케
김은일 변호사흙수저 코스프레의 역겨움`돈에 진심`인 그들의 배신`나는 부자 너희는 가난` 분노케
김은일 변호사

조금 오래된 일인데 지난 2017년 대선 토론회 때 당시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한 말이 있다. "같은 흙수저 출신인데 홍후보는 왜 금수저들을 주적이라고 하지 않고 나를 주적이라고 하는가?"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고, 다음에는 궁금함이 일었다. 왜냐하면 이런 말은 인간을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어 대립시키는 100년 전에나 유행한 소위 `계급투쟁론`에 기반한 것이어서, 40년 이상을 대한민국의 상류층인 변호사로 살았고 자기 자식들은 소위 금수저 범주에서 키운 사람이 금수저, 즉 부자들을 주적이라고 타겟팅하는 것이 과연 진심에서 나오는 말일까, 진심이라면 어떤 사고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문재인 5년 동안, 그리고 퇴임 후의 일련의 행위를 보며 자연히 얻게 되었다. 진심은커녕 권력 획득을 위한 정치적 레토릭일 뿐이라는 것이다. 과거 칼럼에서도 썼지만 김정숙은 청와대 있는 동안 엄청난 사치를 하였다. 그것도 사비가 아닌 청와대 공금인 특활비를 이용하여 개인의 옷과 보석 수십억 원어치를 구입했다. 퇴임 직전에 전직 대통령 예우 보조금을 연 2억 6000만 원에서 3억 9000만 원으로 50%를 상향하여 셀프 예우를 하였다. 개 사료비 240만 원을 국가에서 안 준다며 동물애호가 이미지를 만드는 데 쓰던 풍산개를 버렸다. 최근에는 청와대 관저에 있던 국비로 구입한 가구-가전을 모두 양산 사저로 가져갔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양산에 책방을 열면서 유급 직원이 아닌 자원봉사자를 모집했고, 하루 종일 자원봉사를 해야만 점심을 제공하겠다고 하며 `북한식 착취`의 한 면도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요새 말로 정말 `돈에 진심`인 문재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진심인 것이 흠은 아니지만, 문재인의 역겨운 점은 남의 것, 즉 나라 돈과 타인의 땀을 탐내는 것에 있다.

한편, 민주당의 김남국이라는 아이는 떨어진 운동화 보여주고 라면만 먹고 산다며 가난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 후원금을 잘 챙겨 오다가 수십억 자산가임이 밝혀져서 지금 한 편의 코미디를 써가고 있다. 또 다른 장경태라는 아이는 지난 총선에서 혼자 원룸에서 사는 것을 보여주면서 `옛날부터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라며 세계 최초의 `정치 빈곤 포르노`를 찍기도 했었다. 박주민이라는 옷에 액세사리 달기 좋아하는 의원은 부러진 안경테를 쓰고 나와 가난 코스프레 하더니 자기 아파트 전세금을 꼼수로 올려 받다가 비난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민주당에 이런 사례는 `박선영`, `박원순` 등 수도 없이 많다.

최근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돕는다던 단체가 징용 피해자 유족에게 "판결로 받은 돈의 20%를 주기로 한 약정을 이행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일본의 책임을 묻는 것보다 돈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냐는 빈축을 사고 있다. 사실 이런 약정은 변호사법 위반으로 무효일 가능성이 높은 데다, 약정 시점이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라서 `승소 가능성이 보이자 돈 챙길 궁리부터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좌파들의 이런 위선적 행태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좌파들이 추앙해마지 않는 노암 촘스키는 미국 국방부를 `인류 최악의 악`이라고 비난한 뒤 국방부가 발주한 수백만 달러의 연구 계약을 따내거나 미국 기업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면서 주식에 투자해 빈축을 샀다.

이들은 돈을 너무나 좋아하고 실제로 부자이면서도 스스로를 흙수저로 규정하고 가난한 척하면서 가난을 찬양하고 권장한다. 부유한 자들이 가난을 노래하면서 더 큰 부를 축척하고, 가난한 자들의 의지를 마비시켜 가능성을 가둬 놓는다. 가난은 모든 분노와 증오의 원천이고 시기와 질투의 매개체이므로 가난은 찌그러진 냄비 속에서 영원히 불쌍한 대상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들에게 있어 타인의 가난은 극복시킬 대상이 아닌 활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부자이지만 너희들은 계속 가난해라. 대를 이은 가난 속에서 계속 분노하고 증오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우리에게 표를 다오. 그러면 우리는 더 부자가 되어 너희들의 가난을 더 많이 찬양해 줄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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