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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르치는 대학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잘 가르치는 대학에 대한 몇 가지 단상
  • 이범종
  • 승인 2023.05.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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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인제대학교 방사선화학과 교수
이범종 인제대학교 방사선화학과 교수

“명강보다 좋은 것이 휴강이고, 휴강보다 좋은 것은 조기 종강이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말이지만, 이 말은 옛적 대학가의 농담 섞인 ‘명언’이었다. 당시에는 대학이 지금처럼 교수의 수업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다. 그것은 학생모집에 걱정이 없던 시절이었고, 정부의 대학 평가나 교수의 승진도 주로 연구업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이런 상황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는데, 당시 속칭 좋은 강의로서 공학적 교수학습법을 소개해 한국의 교육계에 돌풍을 일으킨 사람으로 미국 미시간공대의 조벽 교수가 있었다. 그는 미국공학교육학회 교육자상을 받은 교수로서 우리말이 서툰데도 전국의 대학을 돌며 교수학습법을 재미있게 강연했고, 인제대에서도 초청 강연을 한 바 있다. 정부가 ‘잘 가르치는 대학’ 즉, 대학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재정지원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이다. 입학자원의 감소가 예상되고 시대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대학의 구조조정과 함께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2010년도부터 교육부가 실시한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 후에 ACE+)이 그것인데, 이 사업은 2019년부터는 다른 역량강화사업과 함께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통합되었다.

이와 더불어 2011년부터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학부교육 실태조사(K-NSSE)’를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평가'(후에 대학기본역량진단)를 통해 입학정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평가에서 탈락을 우려해 대학들이 기관연구센터(IRC) 등을 두고 데이터에 기반한 성과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K-NSSE 항목에는 학생들이 대학에 재학하면서 겪는 학습경험, 토론 경험, 교우관계, 교수와 학생의 교류, 대학환경 등이 포함되며, 2022년 조사에서는 '디지털·데이터 리터러시 역량' 항목이 추가되었다. 이 조사를 통해 대학 간 비교, 대학 내 비교, 성장 분석이 가능하며, 대학 자체평가 및 학부교육 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가 제공된다.

위와 같은 대학과 정부의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흐름을 살펴보면서 현시점에서 더 필요하거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세대 변화를 고려한 맞춤형 교육 및 환경의 제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대를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지만, 향후 10여 년에 걸쳐 Z세대가 대학에 들어온다. 이들은 모바일 네이티브이고 지구인이며 공유 1세대이다. 또한 BTS 팬덤과 세월호 사건 등을 겪은 코호트(동년배) 효과, 그리고 인류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콘택트 약화와 커넥트 강화를 겪은 기간 효과가 나타나는 세대이다. 이들은 2015 교육과정으로 통합교육을 받았다. 앞으로는 2022 교육과정을 통해 종이 교과서가 아닌 AI 디지털 교과서와 고교학점제를 경험한 학생이 대학에 들어온다. 또한 이들은 고교에서부터 프로젝트·토론형 수업 등 다양한 형태의 수업 혁신을 체험한 세대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강조하는 미래 시대의 핵심역량(6C) 중에 문화예술 관련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발달시켜 전인적 성장을 도와야 하고, 융합과 창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도 문화예술 역량은 중요하다. 분석 자료에 의하면, 특히 ACE 사업을 수행한 대학일수록 비판적 사고와 같은 이성적 핵심역량은 강조되고, 문화예술 등 감성적 핵심역량은 소홀하다고 한다. 문화예술 역량의 강화는 Z세대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항상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단절의 불안감과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온라인에서는 끈끈하게 오프라인에서는 다소 느슨하게 연결되는 것 또한 Z세대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대학 생활 중에 이들의 학습모임뿐만 아니라 독서, 음식, 스포츠, 게임, 레저·여행, 음악, 휴식, 환경보호 등 문화예술이 포함된 유대 모임이 활성화되도록 대학이 그 역할을 담당해 줘야 한다.

결론적으로 잘 가르치는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요인들이 갖춰져야 한다. 명확한 교육이념과 목표, 리더의 강력한 비전, 생산적 위기의식, 움직이는 교수, 학생의 동기유발, 공동체 가치관과 문화, 혁신적 교육프로그램과 제도, 성공사례에 대한 효과적 공유 등이다. 특히, 교수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상품인 수업의 품질을 높일 것인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객인 학생과 사회의 요구를 파악하여, 거기에 맞게 커리큘럼을 편성하고, 그것을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해야 한다. 또한 대학은 Z세대 학생을 위해서 통쾌하게 터지는 와이파이, 적극적인 소셜미디어의 활용, 다양한 유형의 창의적인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잘 가르치는 교수’(이의용, 2010)라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명(名, 明, 命)강사’의 한자를 빌어 교수의 ‘명강'(名講)을 풀어 본다. ‘名講'(명강)이란 먼저 ‘明講'(명강)을 통해 자신이 아는 것을 명확하고 쉽게 가르치고, 나아가 ‘命講'(명강)을 함으로써 소명 의식과 사명감,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은 교수가 가르치는 내용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방식과 태도도 함께 배우므로 삶으로도 가르쳐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간디도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라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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