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15:46 (토)
"아이들 눈이 이끈 20년 해외봉사… 정치 여정 후 다시 나갈 것"
"아이들 눈이 이끈 20년 해외봉사… 정치 여정 후 다시 나갈 것"
  • 황원식 기자
  • 승인 2023.05.24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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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 경남매일 CEO아카데미

지면으로 읽는 여덟 번째 강의

강사 홍태용 김해시장
주제 글로벌 비즈니스ㆍ문화코드
열린의사회 의사로 20개국 다녀
문화 차이로 인해 오해 받기도
총격전 위험에도 의지 불태워
문화 다양성 존중 현지 적응 쉬워
홍태용 김해시장이 지난 23일 제5기 경남매일CEO아카데미에서 `글로벌 비즈니스와 문화코드`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홍태용 김해시장이 지난 23일
제5기 경남매일CEO아카데미에서
`글로벌 비즈니스와 문화코드`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홍태용 김해시장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많은 시간을 의사로서 살아왔다. 특히 "모든 정치 여정이 끝나면 의료봉사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로 봉사에 진심이다. 그는 민간의료봉사단체인 `열린의사회` 소속 의사로 20년 이상 해외 각지에 다녔다. 재난과 내전으로 난민이 되거나, 오지에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줬다. 가까이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죽을 뻔했던 위험도 그를 막지 못했다. 홍 시장은 경남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20여 개국 의료봉사 경험에서 배운 지혜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홍태용 김해시장이 지난 23일 저녁 김해 아이스퀘어호텔서 열린 제5기 경남매일CEO아카데미에서 `글로벌 비즈니스와 문화코드`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 1999년부터 열린의사회에 가입해 몽골,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아이티 등 의료 빈곤층을 찾아다닌 이야기는 그의 저서인 `다시, 낯선 길에서`(글통, 2019)에 잘 나와 있다.

4기 원우이기 한 홍태용 시장은 "제 개인적인 경험이 원우 분들이 해외여행을 하거나 사업을 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현장에서 찍었던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듯 진행했다. 재미있는 일화를 얘기할 때에는 특유의 유머 감각도 잃지 않았다. 특히 이날은 5기 원우인 가수 김수희 씨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강연이 끝난 후, 김수희 씨는 `너무합니다` `남행열차` `애모` `광야` 등 히트곡을 열창하며 감동을 주었다.

△해외의료봉사에서 찾은 기쁨과 성장

그가 열린의사회에 가입한 시기는 1999년이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가지고 있는 의료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단체를 알아봤다. 당시 국내 소외계층과 해외 저개발국 대상 의료봉사, 재난에 대응한 긴급구호활동 등을 하던 `열린의사회`에 마음이 이끌려 합류했다.

해외 분쟁지역이나 오지는 위험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의료진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군가 해야 할 봉사라면 고참 멤버가 갔다"며 "그러다 보니 평범한 지역보다 어려운 지역을 많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또한 기업에서 후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들은 대부분 수백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각자가 낸다.

"팀을 꾸려 갈 때에는 의료봉사팀과 자원봉사팀으로 나뉩니다. 자원봉사팀 중에 절반은 노력봉사입니다. 집을 고치거나, 화장실을 개조하거나, 때로는 아이들과 같이 놀아 주기도 합니다. 치과선생님들은 아이들 양치질 등 구강관리와 위생관리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현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작은 선물을 받을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홍태용 김해시장이 강연을 마친 후 제5기 경남매일CEO아카데미 원우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홍태용 김해시장이 강연을 마친 후 제5기 경남매일CEO아카데미 원우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몽골에 갔던 사진을 보여주면서 "처음에는 가족들이 이해를 못 했다"면서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돈을 들여서 가느냐"면서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끈질긴 설득으로 가족들도 함께 봉사를 가게 됐고, 그 이후에는 그 보람을 알고 자신들이 먼저 신청해서 가게 됐다고 흐뭇해했다.

청소년들에게도 봉사활동을 권했다. "여름방학을 활용해 중학생들도 많이 참여합니다. 출국할 때는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현지에서는 보건복지부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공인된 절차를 거치다 보니 부모님들도 안심하고 보냅니다. 실제로 학생들은 처음에는 표정이 시큰둥합니다. 게다가 푸세식 화장실에, 침낭에서 자야 하는 환경에서 많이 혼란스러워하지만 일정을 마칠 때쯤에는 훌쩍 커서 돌아옵니다."

△문화적 다양성 존중해야 현지 적응 쉬워

문화 다양성 이야기가 많았다. 열린의사회는 몽골에 자주 가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화를 설명했다. "몽골 사람들은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분들 중에는 10명 중에 1명은 한국말을 잘합니다. `못 알아듣겠지` 생각해서 오해 소지가 있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과거 대륙을 점령했던 역사가 있어서인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실제 오해를 받아 난처했던 경험도 있었다. 몽골 공영인터뷰 방송 때 `몽골 사람들이 선천적인 질병이 왜 많냐`는 질문에 `과거 유목민족에서 나타나는 근친상간의 영향이지 않겠냐`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다가 불쾌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사과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초창기였고 조심스럽게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이슬람권 국가인 리비아에 갔을 때 곤욕을 치른 일화도 소개했다. 봉사 허락을 받기 위해 고위공무원에게 영양제 선물했는데, 돼지 태반 추출물이 성분으로 들어있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돼지를 터부시하기 때문에 먹지 않았던 것. 총을 든 사람들이 봉사단을 잡으러 왔던 상황까지 연출됐다. 돼지 성분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해명해서 오해는 풀렸지만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또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가방을 도난당했던 일과, 시장에서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속옷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장을 구매했던 일을 말할 때에는 관중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위험했던 순간에도 봉사 의지 꺾이지 않아

홍태용(오른쪽) 김해시장이 경남매일신문 정창훈 대표이사(왼쪽)와 가수 김수희 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홍태용(오른쪽) 김해시장이
경남매일신문 정창훈 대표이사(왼쪽)와
가수 김수희 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찔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지난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더욱 집중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극우이슬람인 탈레반과 정부군이 교전을 치르고 있을 때라서 외교통상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유엔의 허락을 통해 출발할 수 있었던 봉사단은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우즈베키스탄을 거쳐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진입하는 검문소에서 무려 8시간을 이유도 없이 잡혀 있기도 했고, 구호 물품을 나눠줄 때에는 총을 든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그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료를 하다가 봉사단을 보호해 주던 군인이 사망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봉사단이 관군 편이라고 생각해 호의적이지 않았기에 테러의 위험이 있었다. 관군은 대피소에서 나오지 말 것을 권유했으나 봉사단은 몇 시간이라도 진료를 할 것을 고집했다. 당시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아이들이 많아 청진기가 의미 없다고 판단해 시장에서 먹을 것을 구해 나눠주기도 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언젠가는 꼭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으나 계속된 내전으로 아직도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라고 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의식, 박애 정신 지녀

"아이들의 예쁜 눈을 보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습니다. 다녀오고 나면 며칠은 잔상이 남아서 또 가야지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로 갈지, 어떤 상황에 갈지 알 수는 없지만 가야될 때가 생기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리랑카에 갔던 일화를 말할 때에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했다. 당시 쓰나미로 많은 사람과 집들이 다 쓸려갔던 처참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가족이 파도에 쓸려가는 것을 눈으로 보아야만 했다. "당시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친 분도 많아서 정성을 다해 진료를 했습니다. 그분들이 생선을 드시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가족들을 뜯어먹은 물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도 알았다면 생선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필리핀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진료 갔을 때에도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분들이 우리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맙다고 울었습니다. 자기가 목숨을 바쳐서 지켜냈던 나라에서 와준 것이 고맙고, 자기가 지켜낸 나라가 강대국이 된 것에 대해서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그때 국가보훈처에 이분들에게 한국을 보여주고 싶다고 제안해서 지금은 해마다 여러 국가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에서 국적을 뛰어넘어 인류에 대한 박애 정신과 공감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보였다. 시리아 난민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했을 때의 즐거웠던 기억을 이야기할 때 상기된 표정과, 아이들의 크고 예쁜 눈에서 봉사의 동기를 얻는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가수 김수희 씨는 홍 시장의 강연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책 속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시장님처럼 현실생활 속에서 사람들의 아픔을 알고, 같이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있어야 나라의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수희 씨는 강연이 끝난 후 화려했던 가수 인생에 대해서 짧게 강연을 하고,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며 원우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며 "이런 때에 남행열차와 같은 국민가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앨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 건재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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