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26 (금)
정치의 품격이 우스운 이유
정치의 품격이 우스운 이유
  • 류한열 기자
  • 승인 2023.05.17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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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정치의 품격이 사라진 시대에 귀를 열고 사는 국민은 괴롭다. 정치판에는 원색적인 비난만 우글거리고, 여는 야에게 야는 여에게 칼을 겨누는 형국이 너무 부담스럽다. 오직 본능을 좇는 정치인만 넘쳐나는 정치판을 깡패 소굴 같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정치인의 품격이 겉으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다고 나타나지도 않지만, 막가는 정치인이 만드는 공기를 맡으면 품격은 한낱 쓰레기통에 뒹구는 휴지조각보다 못 하다는 실감을 한다.

여야가 맞닿는 지점에 포용은 있을 수 없다. 진보와 보수가 짜놓은 프레임 게임은 블랙홀을 만들어 여야를 불문하고 발을 헛디디면 끝없이 추락한다. 프레임 전쟁에서 더 단단한 고리를 만들어 상대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면 된다. 윤석열 정부를 대하는 야권의 비판에는 품격이 없다. 일단 엑스를 치고 본다. 지난달 윤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중에 나온 야당의 비판을 들으면 정신이 아득하다. `사기 외교`라는 말을 거침없어 퍼붓고, 윤 대통령이 미국에서 행한 외교 활동은 모두 국익을 말살하는 헛일로 만들었다. 여당이 말한 "새로운 역사"가 야당에 가면 사기가 되는 세상이다.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건 당연하다 해도 절제되지 않은 비판은 악취가 나기 마련이다.

현재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우리 정치의 불행이다. 피의자인 야당 대표한테서 정치의 품격을 찾기는 봄날에 하얀 눈을 바라기보다 어렵다. 이재명 대표의 능력이나 인격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피의자 신분에서 나오는 정치의 품격을 바랄 순 없기 때문이다. 내 살고 봐야하는 처지에서 온전한 여야 관계를 설정하기는 어렵다. 여야 대표가 한자리에 앉기가 어려운 구도다. 윤 대통령은 무조건 이재명 대표를 만나야 한다는 말에도 귀를 닫고 있다. 만나도 본전도 못 찾는데 굳이 만날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그사이 정치의 품격은 사그라들어 형체도 찾기 어렵다. 이 이상야릇한 정치 구도가 문제다. 정치적 수사나 지혜가 필요 없는 현재의 정치판은 원초적 품격 제로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뿌려대는 말을 들으면 하염없이 부끄럽다. 정치판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체가 괴롭다. 그나마 좌우로 끝까지 기운 그들은 자신들의 리그이기에 참아낼 따름이다. 극단으로 치달은 말에는 시원함이 있다. 통쾌하다. 단지 그들 팬덤에 속한 일부에게 해당한다. 김남국 코인 의혹은 `이모`보다 더 재미있는 `고모` 편이다. 법사위 회의장에서 코인 거래는 그나마 볼 만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하는 모습에서 이 땅에 사는 걸 부끄럽게 만든다. "네가 정당하면 돌을 던져라"고 고개를 쳐들 때 국회의원의 품격은 없다.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는가"라고 두둔하는 종교인의 말에서 우리는 자괴감을 느낀다. 바른길이 아닌 편먹기로 재단하는 곳에는 양심의 향기가 없다.

우리 정치판에 정의로운 얼굴을 하고 큰판을 만들어 한탕을 하겠다고 벼르는 기운이 가득하다. 이런 기운을 느낌이라고 대충 넘기기에는 실제하는 힘이 전해오고 있다. 다시 촛불을 들어 판을 엎어보려는 힘도 느껴진다. 일렁거리는 허망한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한다. 온 산을 불태울 기세로 권력을 무너뜨리려고 드러낸 실체는 그림자로 임한다. 역사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 가면을 찢어 민낯을 봐야 한다. 촛불 그림자로 진실을 덮으려는 권력은 꽉 짜인 정치 구도를 좋아한다. 진실보다는 팬심을 기대하는 정치인이 너무 많다.

흑백의 구분이 너무 뚜렷한 정치판을 붙들고 인기를 끄는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가관이다. 보수 유튜버는 진보를 싹 쓸어버릴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진보 유튜버는 노골적으로 보수를 까는데 뛰어나다. 상대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상대를 죽이는 목소리를 들으면 웬만한 사람은 빠져들 수밖에 없다. 비판적 힘을 가지지 않으면 쉽게 한쪽으로 넘어가 `구독자`가 되고 특정 색깔을 내는 유튜브 방송에 빠진다. 이들의 입에서 뿜어내는 막강한 힘은 옳든 그르든 환호를 받는다. 품격 없는 정치를 보면서 박수하는 팬들은 자기 색깔 유튜브 방송에 목을 맨다.

정치가 상생 결단식으로 가면 국민의 삶이 더욱 팍팍해진다. 우리 정치 품격이 추락하면서 정치 팬덤이 형성돼 정치 이야기는 늘 전쟁터가 된다. 옳고 그름을 논하는 정치 이야기는 없다. 돌을 던지라고 하면서 자기 편은 감싸줄 것을 기대한다. 내 편 편향이 판치는 세상에서 국가 안보를 두고도 편싸움이 된다. "한 푼도 안 받았다"고 버티는 정치판에서 더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는 게 되레 우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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