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0:33 (토)
지자체와 지역대학 그리고 도시의 품격
지자체와 지역대학 그리고 도시의 품격
  • 이범종
  • 승인 2023.05.0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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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인제대학교 방사선화학과 교수
이범종 인제대학교 방사선화학과 교수

윤석열 정부의 지역대학에 관한 정책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이른바 라이즈(RISE) 사업과 글로컬30 사업이 그것이다. 전자는 오는 2025년부터 교육부 대학재정지원 예산의 50% 이상을 지자체 주도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후자는 올해부터 5년간 지역 대학에 1000억 원을 지원해 지역 명문대학 30개를 만든다는 사업이다. 두 사업 모두 담대한 혁신을 요구하는데 글로컬30 사업의 경우, 예비지정 시 평가기준이 혁신성 60점, 성과관리 20점, 지역적 특성 20점이다. 성과관리는 혁신추진 관리체계 점수이므로 이 점수까지 포함하면 총점의 80%가 혁신 관련 점수이다. 두 사업 모두 대학은 지자체와 협력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두 단체는 고등교육 정책을 스스로 수립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특히 지자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고등교육 정책에서 배제되거나 사업 추진의 보조자였다. 이제부터는 대학과 지자체가 위기 극복의 주체로서 책무성이 커진 만큼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새로운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의 대학과 지자체 간 협력은 주로 산학협력 분야에서 이뤄져 왔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서, 지자체가 가장 바라는 것이 관내 기업의 성장이고, 대학은 기술개발을 통해 이를 도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이 지역사회에 이전돼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예로 인제대는 의생명 산업의 불모지였던 김해시에 이 산업의 싹을 틔우는 역할을 했다. 인제대는 일찍이 의생명 분야를 특성화했고, 지난 2001년에는 김해시의 지원에 힘입어 정부 지정 인제대 지역협력연구센터(BPRC)를 유치했다. 김해시는 인제대와의 협업을 통해 2005년에는 현재 의생명산업진흥원으로 발전한 차세대 의생명융합산업지원센터를, 2019년에는 김해시 의생명ㆍ의료기기 강소연구개발특구를 유치했다. 이제는 의생명 산업이 김해시의 5대 전략산업(의생명, 디지털물류, 스마트센서, 미래 자동차, 지능형 로봇)에 포함됐다. 다른 분야의 전략산업과도 인제대가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대학과 지자체가 인구 감소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상생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학협력 위주의 협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정부 또한 두 단체의 협력을 통한 강도 높은 혁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학과 지자체는 산학협력에 추가해 어떠한 협력을 통해 상생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도시와 대학이 선진국에 걸맞게 품격 있는 도시, 대학다운 대학이 돼야 한다.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의 대학 수준을 넘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도시의 품격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대학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돼 규제가 완화되면 산학협력 외에도 대학과 지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필자는 지자체가 대학을 통해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쓰는 것과 대학은 지역사회의 현안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열린 교육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다음과 같은 확대 협력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지자체가 지역 고유의 품격 있는 문화 창달을 위해 분야별 인재 양성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졸업생이 지역사회에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인문학, 순수예술, 사회체육 영역을 전공한 대학 졸업생들이 그 지역에 살면서 자신의 지식과 기술,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 박물관, 미디어센터, 체육시설과 같은 공공시설물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가락국의 고도인 김해시는 어느 도시보다도 이들 분야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이를 통해 대학과 지자체의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돈독해지고,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은 학문조차도 경제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현시대에서 지역 대학을 대학답게 살리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둘째, 대학은 캠퍼스를 개방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연령층은 물론, 사회적 약자층까지 아우르는 전체 시민의 고등교육 기관이 돼야 한다. 물론 지금도 대학에서 평생교육을 실시하고, 영재교육과 중등학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제는 열린 교육이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학생, 느린학습자 등을 위한 교육으로 확대돼야 하며, 지자체도 아낌없이 이들의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대학으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대학과 지자체가 협력해야 한다. 재활을 비롯한 보건의료 분야가 특성화된 인제대는 어느 대학보다도 이들 교육에 최적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를 활용해 지역사회의 현안을 대학이 도와 해결한다면 이것은 산학협력을 넘어 인제대와 김해시의 또 다른 모범적인 혁신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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