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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열 기고 봄밤에 읽는 `을묘사직소`
이병열 기고 봄밤에 읽는 `을묘사직소`
  • 이병열
  • 승인 2023.04.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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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열 남명건설 회장
이병열 남명건설 회장

봄밤에 을묘사직소를 읽는다. 깊고 높고 삼엄한 조선의 궁궐 담장을 넘어 날아든 한 편의 상소.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을묘사직소다. 임금과 조정을 꾸짖는 차고 강직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을묘사직소는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몸이 떨리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을묘사직소는 명종 1555년 임금이 남명 조식에게 단성 현감을 제수하였고 조식이 단성 현감 자리에 나가지 못함에 대해 칼처럼 날 선 문장으로 임금에게 올린 상소이다.

선생은 단성 현감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로 병약하고 노쇠하여 나랏일을 수행하기 어렵고 실력보다 명성이 더 많이 나서, 제수된 벼슬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관매직보다 더 나쁘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명종 즉위 이후의 국정에 대해 혹평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물고기가 썩을 때 뱃속부터 썩는 것처럼 나라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고 벼슬아치들은 자신의 은밀한 뒷배를 위해 백성의 가죽까지 벗겨냅니다. 가죽이 없으면 털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죽을 벗겨내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종대왕 때 대마도를 정벌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일본의 침략 앞에 있습니다. 전하가 좋아하여 따르고자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임금이 삼감(敬)으로써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학문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자신을 닦는 것으로, 현명한 인재를 뽑아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죽을죄를 범하며 아룁니다. 남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사대부들에겐 금기였던 문정왕후를 문이 겹겹이 달린 궁궐에서만 살아와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로 명종은 임금의 책무를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일 뿐으로 일갈했다.

이 무서운 문장의 `을묘사직소`(뜻있는 도서출판 간) 한 편으로 남명 조식은 당대 조선 최고의 선비로 알려지게 되었다.

당대의 정치 현실로 볼 때, 믿을 수 없는 상소이다. 그럼에도 남명 조식은 임금으로부터 살아남았다. 감히 짐작건대, 조정 또한 이 상소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만약 그를 해한다면 후폭풍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남명 선생의 경의 사상과 실천 사상은 울림이 크다. 세상의 선비들은 어려운 이론을 입으로는 말하지만, 정작 물을 뿌려 마당 한 번 쓸어내는 실천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한다는 것이 남명 선생의 생각이다.

남명 선생의 사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그의 많은 제자들이 의병 활동을 하고 진심으로 나라를 구하기에 힘을 쓴 것도 이런 가르침 때문이다. 필자는 김해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남명은 30세에 처가가 있는 김해로 이사를 왔다. 현 주동리 원동마을이다. 이곳에 산해정을 짓고 깊은 학문의 세계로 들어갔다. 산해정의 이름에는 태산에 올라 사해를 바라보는 기상과 학문과 인격을 닦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곡 성운, 청향당 이원, 항강 이희안, 송계 신계성 등 당대의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학자들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고 모여드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후학을 길러낸 산해정은 남명 조식이 진정한 학자로서의 기반을 다진 곳이며, 기묘사화 이후 정치권력에 의해 꺾였던 사림의 기풍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구심점이 되었다.

나는 중학교 때 처음 어른들의 얘기와 고전을 통해 남명 조식 선생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생긴 것도 그때쯤이었다. 견딜 수 없는 정적 속에 돌올한 위엄을 갖춘 채 꼿꼿하게 서 있는 조선의 선비가 있다면 의당 맨 앞자리에 계실 분이 남명 조식 선생이었다. 특히 선생의 실천 사상은 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건축 사업을 하면서 회사 상호를 `남명건설`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선생의 호인 남명(南冥)을 그대로 쓰지 않고 `남명`(南明)으로 한 것은 선생의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었고 무엇보다 두려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을묘사직소는 어느 시대에나 인생 교본으로 삼을만한 책이다. 힘없는 조선 백성들에게 소문만으로도 이 상소가 억눌린 억울함을 풀어주었듯이,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용기와 기개를 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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