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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역사관서 본 빨치산ㆍ제주 4ㆍ3사건 ①
지리산역사관서 본 빨치산ㆍ제주 4ㆍ3사건 ①
  • 김은일
  • 승인 2023.04.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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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은 일
김 은 일

저번 주말에 벚꽃 축제도 구경할 겸해서 하동 화개리 쪽으로 캠핑을 다녀왔다. 벚꽃은 여기도 많은데 굳이 하동까지 간 이유는 화개리에서 지리산 쪽 끝 마을인 의신마을에 가보고 싶어서였다. 지리산 아래 첫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의신마을은 반달곰 생태마을로도 알려져 있어 아이에게 체험을 하도록 해보고 싶었고 지리산에서 가장 깊은 마을이라 자연에서의 캠핑이 가능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거기에 가서 보니 지리산 깊은 계곡 속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한국 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 루트와 가까웠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해방 이후 빨치산의 탄생과 토벌과정을 기록한 지리산 역사관이 이곳에 있었다. 운 좋게 원하는 캠핑장을 발견해 만족스러운 캠핑을 하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근처에 있는 지리산역사관을 방문해 보았는데 여기서 빨치산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됐다.

필자는 빨치산을 지리산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공산주의 무장투쟁세력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빨치산은 비정규군을 뜻하는 `파르티잔`을 한글화한 단어로서 해방 후 남로당의 무장투쟁전술을 수행한 조직을 일컫는 말이며 지리산에 국한된 용어가 아니었다. 당시 남한은 소련과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한 폭력투쟁이 매우 치열했는데, 1946년 10월 대구 폭동, 1948년 제주 4ㆍ3 폭동, 같은 해 10월의 여순반란사건이 대표적인 좌익의 무장 폭력투쟁이었다. 당시 현실은 공식적인 전쟁이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했다 뿐이지 해방 이후부터 남조선을 공산화하기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무장폭력사태와 이에 토벌 작전이 계속돼서 남한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좌익 무장폭동의 공통점은 좌익과 동조세력들이 무기고를 탈취해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해, 공무원과 그 가족을 처참히 살육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 살육의 방법은 전형적인 공산당식이어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때로는 가족까지 때려죽이고 찔러 죽이고 찢어 죽이고 찍어 죽였다. 공산당이 가학적 학살을 즐긴 것은 소위 `반동학살`이라는 이름하에 학살을 `위대한 혁명적 행위`로 합리화했기 때문에 양심을 마취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좌익이 선동한 폭력에는 깡패와 양아치, 부화뇌동한 민중이 대거 참여해 절제되지 않는 살육에 도를 더했다. 그 잔인함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대구 폭동 당시 경북 약목지서를 습격한 폭도들이 근무 중인 경찰 3명을 기둥에 묶은 채로 도끼와 낫으로 전신을 참살했다고 한다. 왜관 경찰서에서는 서장의 몸을 두부에서부터 밑으로 절반을 도끼로 찢어 죽였다고 한다.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김달삼과 이덕구 등은 남한만의 5ㆍ10 총선거를 폭력으로 저지하고 제주도에 인민정부를 독자적으로 수립하기 위해 공산주의 세포 조직을 만들어 두었을 뿐 아니라 조선인민유격대 예하 `제주도인민유격대`를 조직해 한라산에 본부를 두고 군사훈련까지 실시했다. 1948년 4월 3일 김달삼 등 350명의 무장 세력들은 새벽 2시에 제주도 내 경찰지서, 우익인사의 집 등을 일제히 급습해 가족들 포함 수십 명을 하룻밤 사이에 학살하면서 남한 단독정부수립 반대 폭동을 개시했고, 폭동 절정기에 그 수는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군경의 반격이 개시되자 지리산 빨치산처럼 한라산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한라산 빨치산이 됐고, 수개월에 걸친 협상의 기다림이 끝나고 군대에 의한 토벌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 4ㆍ3사태가 전개되게 된다.

제주 4ㆍ3 사태는 당시에 연속됐던 남로당의 무장폭동사건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고 그 주체와 목적에 있어서도 완전히 동일했다. 공산주의자들이 한반도 전체에 공산화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으킨 무장폭동이라는 점 말이다. 이걸 알고 나면 지리산 빨치산과 한라산 빨치산을 달리 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된다. 그런데 지리산 빨치산의 발단이 된 대구폭동과 여순반란사건에 대해서는 폭동과 반란이라는 정의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으면서 제주 4ㆍ3 사태에 대해서는 해마다 정치적인 목적의 발언이나 행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문재인은 대통령 재임 시절인 지난 2020년에 4ㆍ3 기념식을 찾아 말실수인지 고백인지 모를 엄청난 말들을 쏟아냈었을 뿐 아니라 퇴임했으면서도 4ㆍ3 어제 제주도를 찾았고, 자기가 지은 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재명은 4ㆍ3 로또를 바라는지 맥락도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한껏 쏟아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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