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33 (금)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① 한국 고대사의 푯대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① 한국 고대사의 푯대
  • 도명스님
  • 승인 2023.04.03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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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최근 일본의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 왜곡을 두고 한ㆍ일 간의 과거사 문제가 재점화되고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방일 과정에서 보인 행보와 일본의 태도를 두고 많은 국민들이 실망과 함께 분노하고 있다. 물론, 일각의 주장처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용서와 화합으로 과거사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이를 위해선 과거는 그만두더라도 적어도 현재에 또 다른 역사 왜곡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일본에게 섣부른 선의를 베풀다간 오히려 악에 대한 정당성만 키워줄 뿐이며 앞으로 더 큰 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역사에 문외한이었던 필자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가야불교 때문이었다. 가야의 심장인 김해에 살게 되면서 우연히 김해지역에 전승되어오는 가야불교의 기록과 흔적을 들여다보면서부터였다. 이후 가야불교와 함께 가야사도 엿보게 되었는데 가야불교라는 가지는 가야라는 줄기에서 태동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야사를 이해하려면 이웃한 삼국뿐 아니라 한나라와 왜를 비롯한 주변국의 역사도 함께 살펴야 했고 나아가 가야 이전의 삼한과 고조선까지 살펴야 했다. 이렇듯 역사란 시공간 속에 복합적으로 얽혀있기에 분절적인 사고가 아닌 통합적인 사고가 요구되었다.

가야불교는 문헌 기록과 유물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주류 사학계에서는 그 역사성을 인정하길 주저하고 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논문까지 쓰면서 가야불교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며 지우려 한다. 그러나 가야불교는 고려 당대 국사로 존경받던 일연스님께서 찬술한 삼국유사 `가락국기조`와 `파사석탑조`에 그 근거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사 주류사학계에서는 지속적으로 부정해왔고 그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필자의 가야불교 연구는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김해에는 은하사ㆍ장유사ㆍ모은암을 비롯한 가야불교 연기 사찰들이 여럿 있고 김해불교의 정체성이 바로 가야불교인데 자칫하면 이 모두가 송두리째 부정당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가야불교를 알기 위해 가야사를 들여다보면 일제강점기에 "임나는 가야다"라는 `임나가야설`과 고대 일본의 선조라는 왜가 가야를 200여 년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등장한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가야사 주류사학계와 일본은 "임나일본부는 이미 정리되었고 철 지난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지금도 "임나일본부는 없다"라고 주장하는 국내의 사학자들조차 임나 지명을 옛 가야 땅에 비정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가야는 임나가 아니라는 근거가 차고도 넘치지만 주류사학계는 가야는 임나가 맞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원을 쫓다 보면 언제나 일제의 식민사학자들과 맞닿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임나라는 용어가 `일본서기`에는 216회 집중적으로 나오고 우리 역사에는 `광개토태왕릉비`와 `삼국사기 강수열전` 그리고 창원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까지 겨우 3회 파편적으로 나오는데도 가야가 임나라고 우긴다. 일제가 임나의 지명을 한반도 남부 가야에 비정한 것은 임나일본부를 사실화하기 위한 정치공작이었다. 만약 임나가 김해나 고령으로 고착화되면 바늘 뒤의 실처럼 임나일본부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우리 역사를 지켜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우리 학자들이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불리한 허구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임나의 지명문제는 가야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이며 가야불교와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임나일본부의 최초 근거는 광개토태왕릉비다. 하지만 워낙 거대 담론이라 연구할 생각은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부할 수 없는 인연으로 필자에게 다가왔고 화두를 풀 듯 부딪혀 보았다. 능비는 현재 한ㆍ중ㆍ일 삼국에서 보이는 역사 지형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능비의 진실을 밝혀 잃어버린 고대사를 복원하고자 한다. 반면 중국은 동북공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고구려를 그들의 지방정권으로 만들었기에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일본은 그들의 선조가 행한 범죄를 계속 덮어야 하기에 능비의 진실이 드러나길 꺼리고 있다.

이 비는 동북아 고대사의 비밀을 담고 있는 다빈치코드이며 한국 고대사를 바로 정립할 수 있는 푯대이다. 가야불교를 탐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광개토태왕릉비의 진실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바야흐로 광개토태왕이 역사의 흐름 속에 다시 자신의 전신(全身)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한민족의 웅비를 꿈꾸며 능비의 비밀을 함께 풀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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