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가 개발한 챗봇(ChatGPT)에게 물어본다. "예술가가 섬을 왜 찾아가니?" 대답이 가관이다. "예술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찾기 위해 섬을 방문한다. 섬은 자연환경이 원시적이고 순수하여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줄 수 있는 장소다. 또한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어 예술가들이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환경에서 예술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1892년 작품 `언제 결혼하니?`이다. 지난 2015년 2월, 스위스 바젤에서 진행됐던 비공개 경매에서 이 작품은 무려 3억 달러에 중동의 왕족에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초기작품이다.
주식 거래로 많은 돈을 벌어 파리 상류사회에 진입한 고갱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1882년 11월 파리 주식시장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를 만나게 된다. 고흐가 고갱을 동경해서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있는 아를로 와주기를 간청했기 때문이다.
고갱은 고흐의 초청으로 아를에 있는 고흐의 집, 노란색 벽 때문에 노란 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그곳에서 9주 동안 고흐와 함께 지내며 작업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성격, 예술관 차이 때문에 불화가 심해졌고, 결국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나자 고갱은 노란 집을 떠났다. 당시 고흐는 `초록의 악마`라는 독주, 압생트(Absinthe) 중독자였다.
고갱은 처자식 다 버리고 오로지 예술적 영감을 찾아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외딴섬 타히티를 찾아갔다. 그러나 서구 문명에 의해 파괴된 타히티 문화와 원주민의 모습에 고갱은 실망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2년간 머무르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전시회를 열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다시 타히티로 돌아간 고갱의 삶은 그야말로 궁상맞았다. 그림을 그리고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프랑스의 친구들에게 보내고는 팔아서 돈을 부치라고 했고, 친구들은 어렵게 그림을 팔아서 돈을 부쳐줬지만, 경제관념이 없는 고갱에게서 돈은 흔적 없이 사라져갔다. 타히티에는 고갱 박물관(Musee Gau
gain)이 있지만 이곳에는 고갱의 진품이 단 한 점도 없는 이유이다.
고갱은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타히티를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그림을 그렸고 이 시기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생전에는 그리 평가받지 못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인상주의를 벗어나 종합주의 색채론에 입각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원근을 무시한 구도,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를 구사하여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가 되었고, 20세기 표현주의 미술과 추상미술에 영향을 주었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I shut my eyes in order to see)." 고갱이 한 말이다. 그는 눈을 감았기에 볼 수 있었던 강렬한 이미지를 캔버스에 재현하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