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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ㆍ주은래 "만주는 조선민족의 땅"
모택동ㆍ주은래 "만주는 조선민족의 땅"
  • 이헌동
  • 승인 2023.03.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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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헌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북한과 중국이 국경 획정 협상을 하던 지난 1950~1960년대 중국 최고지도자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가 "만주 요동 지방은 원래 조선 땅이었으나 고대 왕조가 조선 민족을 압록강 변까지 내몰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 사실을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북한-중국 국경 획정에 관한 연구>(세종연구소 펴냄)에서 밝혔다. 이 사실은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 주장해온 중국 동북공정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하여 역사주권과 영토주권을 제대로 교육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그러나 정부나 역사학계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모 주석은 지난 1958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 수상 등 북한 대표단에게 "당신들 선조는 당신들의 영토가 요하를 경계로 한다고 말했으며, 당신들은 현재 당신들의 압록강 변까지 밀려서 쫓겨왔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역사를 기술할 때 이것을 써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1958년 11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4책에 실려 있다.

모 주석은 지난 1964년 10월에도 베이징을 찾은 북한 대표단을 만나 "당신들의 경계는 요하 동쪽인데, 봉건주의가 조선 사람들을 압록강변으로 내몬 것이다"라고 말했다. 모 주석의 이런 발언은 1964년 10월 중국 외교부가 펴낸 <모택동접견외빈담화기록휘편> 제11책에 실려 있다.

주은래 총리가 베이징을 찾은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만나 한 발언이 1963년 6월 28일 중국 외교부가 펴낸 <외사공작통보>에 실려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고조선을 기자조선이라고 보고 조선 민족을 기자후손이라고 덧씌우면서 평양에서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는 역사 왜곡이다. 발해도 조선족의 한 지파였다.

조선 민족은 조선반도와 만주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와 송화(松花)강 유역에는 모두 조선 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 강과 송화 강, 도문(圖們)강 유역에서 발굴된 문물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고 많은 조선 문헌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만주족은 조선 민족을 계속 동쪽으로 밀어냈고 결국은 압록과 두만강 동쪽까지 밀어냈다. 만주족은 중국에 공헌한 바가 큰데 바로 중국 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조선 민족의 땅을 밀어붙여 작게 만들고 우리가 살고있는 땅이 된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두만강과 압록강 서쪽은 역사 이래 중국 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택동과 주은래가 요동 지방이 애초 고조선ㆍ고구려ㆍ발해 등 조선 선조들의 영토였으나 중국 봉건왕조의 침략으로 빼앗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중국 쪽 1차 사료로 확인되었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두 최고 지도자가 동일 주제를 언급하며 거의 같은 용어와 문구를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당시 중국 정부의 정리된 공식 방침이었으리라 추정된다"며 "두 중국 지도자의 발언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박할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64년 10월 모택동을 만난 북한의 박금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모택동의 요동 영토 관련 발언을 듣고 "양국 간 국경은 1962년에 이미 해결됐습니다. 주은래 총리가 아주 분명하게 백두산과 천지 문제를 모두 합리적으로 해결했습니다"라며 "현재의 국경선에 우리는 만족합니다"고 하였다.

이는 만주의 옛 영토를 두고 북한의 우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중은 지난 1962년 10월 12일 압록강ㆍ두만강을 공동 이용하며 백두산 천지 영유권을 분할(북 54.5% 중 45.5%)하는 등 북-중 국경조약을 체결했으며, 그해 12월 11일 이 조약 비준서를 교환했다.

"요동 지방은 원래 조선 땅이었으나 중국 왕조가 조선 민족을 압록강 변까지 내몰았다"는 모택동과 주은래의 역사인식은 중국 역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도 반도사관에 의거한 역사교육으로 고려국경을 한반도에 있는 것으로 배웠다. 이것을 극복하고 모택동의 말처럼 고려국경이 요하였으며 고려의 천리장성과 서희의 강동6주, 윤관의 9성, 철령위와 동령위 등이 모두 만주에 있었다는 역사연구를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에서 하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런 역사연구 결과를 교과서에 반영한 역사교육을 해야 함에도 식민사학 유풍에 젖은 역사학계는 자신들의 학설이 무너질까 봐 관심이 없다. 이를 시정해야 할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식민사학 유풍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언제쯤 식민사학 유풍에서 벗어난 바른 역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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