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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 15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존재의 본질 15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 도명스님
  • 승인 2023.03.0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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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조선 중기 서산대사가 계셨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임금의 명으로 팔도총섭이 되어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역할로 인해 호국불교라는 불교의 전통을 말할 때는 언제나 그가 회자 된다. 하지만 국난을 극복한 구국의 인물 이전, 그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으로 인해 인생무상을 절감하고 출가한 수행자였다. 이후 치열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었고 젊어서 도인(道人)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남긴 글 가운데 선가귀감(禪家龜鑑)이 있다.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어야 할 필독서인데 그 첫 구절이 다음과 같다. "지금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스럽다. 일찍이 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不曾生 不曾滅 名不得 狀不得) 이때 등장하는 `한 물건`이라는 용어는 통상 참나 또는 본래면목, 불성(佛性) 등으로 표현한다. 이 책의 첫 구절은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한 물건`이라 말하며 그 특징을 매우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사는 젊은 시절 만행 중 마을에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그가 깨달았다는 주체는 닭 울음소리가 나니 아무런 장애 없이 바로 들을 수 있는 청정한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밝고 신령스러워 생사도 없으며 이름과 형상을 떠나 있는 것으로 표현하니 매우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눈, 귀, 코, 혀, 몸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바깥에 나타나는 물건이나 사람을 직접 접할 때 일어나는 생명현상의 주체를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다.

한 물건과 관련해 우리나라에 서산대사가 있다면 중국 당나라 시대 회양(懷讓)이란 스님이 있었다. 그의 호(號) 남악(南嶽)과 함께 보통 남악 회양이라 불린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당대 불세출의 선지식이라는 육조 혜능대사를 찾아 갔다. "어디서 왔는가?", "숭산에서 왔습니다", "그래,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순간 회양스님은 말문이 턱 막혔다. 달마대사가 도량을 열었던 숭산 소림사에서 수행하다 명망이 자자한 혜능스님을 찾아왔건만 만나자마자 갑자기 던진 그의 물음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이렇게 보고 듣고 오고 가는, 이 한 물건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일념으로 탐색해 갔다. 팔 년을 씨름한 끝에 그는 혜능스님이 물었던 한 물건에 대해 확연히 깨달았고 다시 그를 찾아갔다. 혜능스님은 그 전처럼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물었다. 회양은 그 즉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다시 닦아 증득할 수 있는가?", "닦아 증득할 것이 없지는 않으나 더럽혀질 수는 없습니다"라며 한물건의 본질을 통달한 멋진 답을 하였다.

불교의 최종 목적지는 해탈이며 모든 속박을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청정한 삶의 완성`이라는 붓다의 표현처럼 이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때문에 선사들의 철학적인 문답이 그들의 삶 전체를 드러내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본질을 이치로 먼저 깨우치지 못하면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존재의 본질을 깨우치는 견성(見性)의 과정이 없으면 번뇌를 벗어남이라는 성불(成佛)은 수행을 분류할 때 깨달음까지의 과정을 오전수행(悟前修行)이라 하고 깨달음 이후의 수행을 오후수행(悟後修行)이라 한다. 오전수행의 목표는 이치를 깨닫는 데에 있고 오후수행의 목표는 깨달은 이치를 자기의 삶에 온전히 일치시키는 데 있다. 과일도 후숙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밥도 뜸을 들여야 제대로의 맛이 나는 것처럼 옛 어른들도 "깨달음에도 오전수행보다 오후수행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누구나 다 한 물건의 바탕 위에서 인생을 굴리고 있다. 그러나 눈이 자기의 눈을 못 보는 것처럼 너무 가까운 것은 오히려 보기 어렵다는 진리의 역설 또한 존재한다. 생사를 벗어나 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선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을 내부로 돌려야 하며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 속에서 남들이 가르쳐 주는 답이 아닌 자기 본래 마음이 들려주는 답을 경청해야 한다. 옛 선사가 "문밖에서 들어 온 것은 참다운 보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밖에서 들은 지식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명할 참다운 자기 재산이 못 된다는 의미이다.

믿음은 소중하다. 그러나 진실을 찾아가는 길에는 진지한 의문이 더욱 도움이 된다. 누구에게나 이미 한 물건 주인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찾고자 계속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만 보배 창고는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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