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22 (토)
나라 밖을 내다보자 47
나라 밖을 내다보자 47
  • 박정기
  • 승인 2023.03.06 2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어떻게 사람의 육신이 기관총이나 지뢰, 크레모아 같은 강력한 화력을 뚫을 수가 있나. 진짜 임자를 못 만난 게 일본 육군의 불행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술을 못 고친다. 그냥 돌격을 고집하다가 수많은, 무고한 생령(生靈)들만 제물이 되었다. 모두가 지나친 정신주의의 폐단이다.

다. 와(和)

일본인이 중히 여기는 정신으로 와(和)의 문화가 있다. 1000여 년에 걸쳐 일본인 마음속을 흐르는 정신적 가치. 이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면면히 이어온 것이다. 일본은 섬나라다.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달아날 데가 없다. 따라서 섬 안에서 함께 살려면 모두가 화목해야 한다. 쇼토쿠대자는 `와(和)`를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와는 공동체의 목표에 개인이 협조해야 한다는 암묵적 요구다. 즉, 조직의 평화를 위해 내 주장을 너무 내세워도 안 되고, 더구나 남에게 폐를 끼쳐 남을 불편하게 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극히 조심해야 하고, 생활 공동체를 항상 생각하고, 그 일원으로 행동해야 한다. 즉, 집단적 생활규범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농업국이었다. 특히 일본은 수경 농업이 성하다. 수경 농업은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조상 대대로 토지를 이어받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집착과 정착성이 강하다. 농경민은 어느 민족이나 자연에 순응하고, 경작도 계절 따라 관례대로 행하게 됨으로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이 강해진다.

전통적으로 마을 공동체는 에도시대부터 다음 규약을 잘 지켰다. ①살상하지 말 것 ②도둑질하지 말 것 ③불을 내지 말 것 ④소송을 하지 말 것. 이 규약은 마을의 평화와 화합을 유지하는 데 유효했을 뿐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의 안정을 이루는 데도 주효하였다. 이런 규약이 잘 지켜진 것은 은근하면서도 무서운 응징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즉 규약이 어긋나게 튀는 사람은 `무라하치부`(동네팔푼)같은 집단 따돌림으로 철저히 응징하였다.

일본은 15세기 말부터 100년 동안은 살벌한 전국시대였다. 이어서 250년을 계속한 애도 막부의 평화로운 사회는 산업의 발달과 함께 일본인들에게 여유와 안정을 제공하였다.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자기주장 너무 내세우지 않고, 공동체 집단의 번영을 위해서는 멸사봉공하는 순한 국민, 곧 와(和)의 문화를 다시 꽃피웠다. 나라도 부강해졌다. 메이지유신까지 성공하고, 국가 `에너지`가 넘쳐나니까 정한론((征韓論), 조선 침략)이 일본 내 여론으로 들끓기 시작했다.남의 나라를 넘보다니! 그게 힘의 논리다. 세상의 원리이기도 하고, 힘이 남아돌면 남는 힘을 써야 한다. 임진왜란 때 당해보지 않았나. 지난 1980년대 일본은 평균 GNP 1만 4807달러로 미국 1만 7843달러 다음으로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 당시 일본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간이 커질 대로 커진 일본은 보이는 게 없는 듯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