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0:02 (토)
존재의 본질 11 열린 마음은 진리로 가는 지름길
존재의 본질 11 열린 마음은 진리로 가는 지름길
  • 도명스님명
  • 승인 2023.02.0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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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정담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스님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종교에서 다루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 행복한 삶 그리고 사후에 관한 부분이다. 이를테면 뭇존재들은 어디에서 왔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리고 죽은 후엔 어디로 가는지 등의 주제를 다룬다. 유사 이래 많은 현자들이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했고 가르침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유교의 인(仁), 불교의 자비(慈悲) 그리고 기독교의 사랑(愛) 등이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삶에 대해 새로운 시각도 제시했다. 그 핵심은 외적인 조건의 완성보다 다가오는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하는 인식의 변화가 행복의 열쇠임을 설파했다. 그들은 사회의 변혁보다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 스스로의 무지를 걷어낸다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일생 동안 한일은 사람들의 영적 진보를 위한 교육과 계몽사업이었다.

사실 성자들도 처음엔 존재의 근원에 대해 몰랐다가 깨닫고 보니 진리는 이미 천기누설(天氣漏泄)돼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고 그것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진리 자체가 인격과 의식이 있어 나타내고 숨었던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언제나 스스로의 법칙을 통해 자연계와 인간의 삶 속에 이미 항상 드러나 있었다. 다만 백일하에 드러나 있는 존재의 법칙과 현상을 범부는 몰랐기에, 성자들은 중생에게 복이 아닌 진리를 가르쳐줘 깨우쳤고 스스로 복된 삶을 살게 했던 것이다.

한편, 세상은 대개 본질적인 부분인 형이상학과 그것이 표현되어 나타나는 형이하학의 두 가지로 나뉜다. 교학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본질적인 부분을 `체(體)`라 하고 나타나 드러나는 부분을 `용(用)`이라 한다. 또한 `체`에 대한 이치를 `이(理)`라 하고 `용`에 대한 실천을 `사(事)`라 하며, 두 가지를 통달하면 `이사에 원융(圓融)`한 현자가 된다. 흔히 진리라고 하면 형이상학을 연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자들은 말했다.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현실이라는 형이하학의 세계이며, 항상 `지금 여기`를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불교 용어 중에 연각이란 단어가 있다. 연각(緣覺)이란 스승 없이 홀로 자연의 이치를 관찰해 깨달은 이로 독각(獨覺)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자연을 통해 태극과 음양 그리고 오행의 이치를 깨달은 동양의 현자들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종교에 관계없이 자연의 법칙을 깨달은 현자들이 해당한다. 이처럼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것에는 종교적인 특정한 도그마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바른 안목만이 필요하다.

다만 이런 안목을 방해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진리에 대해 전해오는 다양한 관념들이다. 다양한 종교의 가르침과 경전들은 진리를 탐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것에만 매달려선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경전은 현상의 본질을 말하고 있고 그 현상은 문자가 아닌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신계에서 일어나는 괄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서양에서 깨닫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도(道)와 진리(眞理)라는 선행된 관념에 묶이지 않는 그들의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에 바탕을 둔 사고체계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반면 붓다의 최초 제자들로 알려진 다섯 명의 수행자는 원래 붓다의 본국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 보낸 일종의 호위무사였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그들에게 처음 진리의 설법을 하였을 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 기성세대보다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젊은이들 이었지만 진리와 존재의 본질에 대한 기존의 고정된 관념들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붓다는 몇 번에 걸쳐 그들이 진리에 눈뜰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가르쳤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 중 한 명인 `교진여`가 관념을 걷어내고 진리에 눈을 떴다. 경전에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붓다는 "야! 교진여가 깨달았다. 교진여가 깨달았다!"라고 탄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처음`이라는 새로운 길은 쉽지 않았지만 이윽고 나머지 네 명의 수행자도 차례로 깨닫게 되었고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불교(佛敎)의 출발점이 되었다.

붓다의 첫 설법인 `중도(中道)의 가르침`도 결코 초월적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 치우침 없는 시각으로 있는 그대로를 인식해 조화롭고 균형 잡힌 삶을 살라는 것이다. 깨달음에는 종교와 국경 그리고 인종 등 모든 것을 초월한다. 단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과 허위를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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