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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의 해적들
아덴만의 해적들
  • 김재홍
  • 승인 2023.01.11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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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지난 2010년 기준 전 세계 해적사건의 90%가 소말리아에서 발생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2011년 1월 21일, 대한민국 청해부대 특수부대(UDT/SEAL)가 `삼호 쥬얼리호`를 납포한 해적 8명을 사살, 5명을 생포하고 인질 21명 전원을 구출한 해상작전이다. 생포된 5명은 한국으로 이송되어 대전과 천안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인질들의 식사를 담당하던 `압둘라 세룸`은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 올해 5월 28일 만기 출소한다. 과거 베를린 회담(1884년~1885년)은 유럽의 강대국끼리 평화롭게 아프리카 식민지를 분할하려는 회담이었다. 이 회담을 통해 결정된 기묘한 국경선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부족, 언어, 문화, 역사 등은 무시하고 유럽 강대국들 멋대로 그어진 국경선이 오늘날 아프리카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인들이 사는 곳에는 200개가 넘는 씨족들이 있었지만, 베를린 회담 이후 약 80년간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의 식민지로 나누어져 있었다. 1960년 7월 1일, 소말리아는 독립했으나 혼란을 틈타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통해(1969년) 정권을 장악하여 22년간 독재를 했다. 그는 국가주도의 다양한 사회주의 정책 실시했으나 정치ㆍ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사이의 `오가덴` 지역에 쳐들어간다(1977~1978). 에티오피아 영토지만 대대로 소말리족인 살던 곳이다. 당시 사회주의 맹주인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서 전쟁을 시작했으나 전쟁 직전에 에티오피아에서 사회주의 세력에 의한 쿠데타가 성공하는 바람에 소련은 소말리아를 버리고 에티오피아를 지원해 소말리아는 결국 전쟁에 패배한다.

1991년,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라는 군벌의 지도자가 통일 소말리아회의(USC)를 조직한 뒤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시아드 바레를 축출했다. 그러나 이후의 정국 주도권을 두고 모가디슈에서 내전이 시작되어 소말리아 전국으로 퍼져갔다. 내전을 진압하고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UN의 `평화유지군(UNPKF)`이 들어가지만 모가디슈 전투에서 미군이 큰 피해를 입고 패하자 포기하고 모두 철수했다(1995년).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니 소말리아 연안에는 외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이 극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참치 배도 한몫했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카타르 등은 산업폐기물은 물론 핵폐기물까지 소말리아 영해 내에 투기했다. 여기에 이탈리아 마피아는 전 유럽의 산업폐기물을 소말리아 앞바다에 불법 투기하는 사업을 씨족 군벌들과 결탁해 오랫동안 해왔다. 어민들은 불법어업이나 불법투기를 막기 위해 해상 경비대를 조직했는데, 활동 과정에서 점차 해적으로 변질되었다.

해적이 돈이 된다고 하니 국제적 분업도 이루어진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협상을 도와주는 협상 전문가들도 등장해 피해국과 해적 양쪽에서 수수료를 챙긴다. 여러 나라가 군사작전에 나서면서 위험성은 커지고, 이 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아지니 인질의 `몸값`이 점점 오른다. 소말리아 씨족 군벌의 자금은 두바이의 은행을 통해 세탁이 된다.

이제는 소말리아 부근에서 해적질이 어려워지자 대륙 반대편인 `기니만`에서 해적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수에즈를 통과 못하는 배들은 초긴장해야한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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