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08:51 (토)
존재의 본질 ⑦ 있는 그대로 바로 보기
존재의 본질 ⑦ 있는 그대로 바로 보기
  • 도명스님
  • 승인 2023.01.02 2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명 스님 산 사 정 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어릴 때 내가 살던 고향에서 흔히 쓰던 말 중에 `축기`가 있었다. 이는 어리석은 사람을 지칭하는 바보와 동일시되었고 함께 썼던 말로 `축구`, `축깽이`가 있다. 그리고 같은 뜻을 가진 바보와 축기를 묶어서 `바보축기`라고 쓰기도 했다. 이 말이 어디에서 연원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혹자는 이 용어가 축귀(畜鬼)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는 불교에서 종종 어리석은 부류를 일컬을 때 동물을 뜻하는 축생(畜生)의 `축`과 근본 없고 허망한 존재를 지칭하기도 하는 귀신(鬼神)의 `귀`가 근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은 좀 다르다. 이 용어의 출처는 남송 시대 깨달음의 정수를 모은 서적 <전등록>에 나오는 `한로축괴 사자교인`(韓 逐塊 獅子哮人)이라고 생각한다. 풀이하면 "한나라의 개는 흙덩이를 쫓고, 사자는 사람을 문다" 즉, 흙덩이를 던지면 어리석은 개는 흙덩이가 자기를 괴롭히는 줄 알고 그것을 쫓지만, 영리한 사자는 사람이 흙덩이를 던지는 줄 알기에 즉시 사람을 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축괴(逐塊)란 `흙덩이를 쫓는다`는 뜻으로 본질을 놓치는 어리석은 행위를 말하는데, 이후 절집에서 어리석은 이를 가리킬 때 쓰던 용어가 세상에 퍼져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축괴에서 축기, 축구, 축깽이 등으로 분화하지 않았나 싶다.

출전에 대한 진위 여부는 별도로 하고 이 경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지엽에 떨어지지 말고 본질을 바로 보라`는 것이다. 범부가 인생의 고해(苦海)를 건너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기 위해선 수행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바로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로 그 핵심은 마음의 본질을 깨우치는 `지혜 수행`과 마음을 잘 쓰는 `자비 수행`으로 요약된다. 수행(修行)이란 `닦고 행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의 오염된 생각을 바른 깨우침으로 닦아내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마음을 닦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오염시키는 원인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통상 `마음`이라고 할 때는 개인의 생각에 기반한 주관이나 신념 또는 감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수행의 차원에서 `마음을 깨닫다`라고 말할 때 가리키는 마음은 특정한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계의 모든 생명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생명현상과 그에 따른 반응을 말한다. 이때 `생명현상`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며, 몸으로 감촉하거나, 두뇌로 생각할 때의 지각작용이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늘 경험하는 생명현상의 첫 지점이,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는 분명하지만 선악(善惡)과 시비(是非)는 미리 결정되어있지 않는 자리임을 아는 것이다. `생명현상의 첫 지점`이란 눈, 귀, 코, 혀, 몸, 두뇌가 안팎의 대상들과 인연해 생각으로 `있다`, `없다`, `옳다`, `그르다`, `희다`, `검다` 등을 판단하기 이전, 즉시 보여지고, 들려지며, 냄새 맡아지거나, 맛이 느껴지고, 감촉되어지는 첫 지점을 말한다. 잘 살펴보면 첫 지점은 따로 있지 않고 순간순간 경험하는 모든 현상들이 생명현상의 첫 지점이다. 우리는 이 같은 일을 일상 속에서 늘 경험하고 있지만 놓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복잡하다. 그러나 그 뼈대는 인과에 의한 단순한 현상과 그것을 해석하는 입장과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현상을 표현한 도구인 언어와 문자만 쫓으면 눈앞에 있는 근본을 놓치고 지말(支末)을 쫓는 한로축괴를 면치 못한다. 그래서 먼저 현상을 바로 보아 자기의 존재 원리를 알고 난 이후 세상을 구성하는 논리를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선 냉철한 지성이 요구된다. 수행자가 도 닦을 때 세상 그 누구보다 차갑고 매정한 것은 수행을 완성하기 위한 도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성현은 "인심(人心)이 농후하면 도심(道心)은 엷어진다"라고 경계심을 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과 지속적인 탐구심도 필요하다. 진실을 알 때까지 노력하는 것은, 마치 닭이 알을 품을 때 온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21일 동안 둥지를 떠나지 않고 알을 품는 것과 같다.

나와 세상의 존재 원리를 설명하는 존재론 즉, 생명관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나와 세상을 인식하고 결정하는 바탕으로 작용한다. 또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인 인생관뿐만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과 우주를 통찰하는 우주관에까지 밀접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지금 본래의 마음을 알고자 하시는가? 칼럼의 내용을 인식하기 전, 눈에 들어오는 글자와 여백을 무심히 보고 있는 그곳에 있나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