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2:44 (금)
영화 라 칼리파 OST
영화 라 칼리파 OST
  • 이광수
  • 승인 2022.12.12 0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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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br>
이광수 소설가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아파라/ 종소리 가슴 메여 파리해진 채/ 지난날 그리며 눈물짓노라/ 쇠잔한 내 신세/ 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굴러다니는 낙엽 같아라.
가을이 저물어 가는 이맘때면 폴 베를렌의 우수에 젖은 시가 떠오른다. 한 해를 마감하는 끝자락 12월. 한 장 남은 마지막 달력이 을씨년스럽다. 고독한 계절의 끝자락은 쓸쓸함이 한가득 묻어난다. INFJ 성격유형답게 가을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젊은 시절엔 늦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진해 행암 바닷가를 찾곤 했다. 계절의 낭만과 우수가 뼛속 깊이 스며드는 가을노래는 나이가 무색하게 꺼지지 않는 화톳불처럼 다가온다. 온종일 독서와 글쓰기에 매달리다 보면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 이럴 땐 잠시 책장을 덥고 스마트 폰의 유튜브를 열어 감성적인 음악으로 피로해진 심신을 달랜다. 

얼마 전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OST(삽입곡)를 섭렵하다가 우연히 마주한 `La Califfa(칼리파 부인)`라는 영화의 OST를 듣게 되었다. 필자의 취향에 잘 맞는 음악이라 들어보니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상영되지 않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를 섭렵해 `라 칼리파`라는 영화의 스토리를 읽어보니 이 OST가 왜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울릴 만큼 애잔하고 슬픈지 알 것 같았다. 영화 `칼리파 부인`은 1970년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감독인 알베르트 베빌라 쿠아가 감독한 영화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고 사상적인 통제가 강한 시기여서 국내 상영이 불발된 것 같다. 알베르트 베빌라 쿠아는 이 영화가 제작되기 전인 1964년에 소설 <라 칼리파>를 출간해 크게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6년 뒤인 1970년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 각색과 감독까지 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 `LA CALIFFA`는 매우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여주인공 칼리파는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중 폭력집단으로 죽은 노동조합 지도자의 부인이다. 그녀는 죽은 남편을 대신해 노조의 열성적인 리더가 된다. 역시 노동자 출신으로 출발해 공장주의 위치까지 오른 남자와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회사에서는 암살자를 고용해 이 남자마저 처참하게 죽이고 만다. 두 사람의 사랑을 갈라놓은 그의 죽음은 그녀에겐 너무나 비극적이었다. 1960년대 말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 사회의 한 단 면을 보여주는 슬픈 러브스토리이다. 

이 영화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에 걸맞게 작곡한 OST여서 그런지 너무 슬프고 애잔하다. `라 칼리파 부인`의 삽입곡은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가 작곡했다. 영화보다 배경음악으로 유명세를 타자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라 칼리파`에 직접 가사를 붙여 노래해 크게 히트했다. 그리고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연주곡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연주되고 있다. 특히 엔니오 모리코네의 감성적인 멜로디와 오보에의 맑고 고운 음색이 애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곡이다.

당신은 믿지 않아요/ 당신의 줄에 스스로 얽매인/ 개에 지나지 않는 네게서/ 가진 자의 잔인함을 보았기에/ 위선으로 가득한 당신의 도시를 거닐며/ 당신들을 스쳐 지나가는 나는/ 비겁자에 대한 분노의 울부짖음/ 나와 함께 당신은/ 다시 가장 찬란한 것을 찾으리/ 당신이 찾는 우리 모두에게 / 태양이 비추는 순간. -사라 브라이트만-

가사내용이 애절한 멜로디와 어울려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탄압받는 을의 위치에 선 약자였던 라 칼리파의 처절한 저항과 슬픔이 사라. 브라이트만의 노래 속에 녹아내려 눈물이 되고 빗물이 되어 흐른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지난 역사의 아픈 상처는 딱지로 아물어 새살을 돋우지만 또 다른  상처가 생겨 반복되는 것이 세상사이다. 남녀 간의 슬픈 러브스토리는 세월이 흘러도 잊혀 지지 않고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생각하면 잊을 수 없고(염이불망, 念而不忘), 그리워해도 볼 수 없으며(상이불견, 想而不見), 사랑해도 붙잡을 수 없는 것(애이부득, 愛而不得)이 슬픈 인연이다. 

떠나는 계절의 아쉬움과 한 해를 마감하는 섭섭함을 `라 칼리파`의 OST를 들으면서 지난 일을 추억하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 음악이 없는 삶, 노래가 없는 세상은 황량한 사막처럼 삭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우울한 계절, 아름다운 음악으로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을 담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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