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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튀르키예 그리고 에게해
그리스와 튀르키예 그리고 에게해
  • 김제홍
  • 승인 2022.12.0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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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홍 경남도 해양수산국장

 

에게해(Aegean Sea)는 지중해 안에 있는 여러 바다 가운데서도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포도주 빛이 나는 바다`라고 했다. 

에게해는 그리스와 튀르키예(터키)가 마주하는 바다로, 북쪽으로는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흑해로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본 지중해로 연결된다. 에게해는 유명한 다도해로 그리스령의 섬은 약 6000개이고 튀르키예령 섬은 약 500개라고 알려져 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푸른 지붕으로 유명한 산토리니섬도 여기에 있다.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15세기 말 그리스가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이후 수백 년간 앙숙관계다. 약 400년간의 독립 투쟁 끝에 마침내 그리스는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와 함께 동맹국으로 참전했지만 패전했고, 1920년 세브르 조약(Traite de Sevres)의 결과, 1914년 이전의 영토를 거의 대부분 상실하고 소아시아와 유럽의 일부(이스탄불과 그 주변)만을 지니게 되었다. 그 후, 그리스에게 침공을 받아 위기를 겪었지만, 1922년경부터 케말 장군의 지휘 아래 그리스군을 격파함으로써 그리스 영토 일부까지 실지를 회복하게 된다(로잔조약, 1923년). 

로잔 조약에 따라 이스탄불 인근 동트라키아 지역은 튀르키예 영토가 되었고 에게해의 대부분의 섬은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 튀르키예정부는 섬과 바다를 포기한 대신 역사적 도시 이스탄불을 지켜냈다. 기원전 667년 그리스 식민지일 때 명칭은 비잔티온, 로마제국 말기 수도로서 명칭은 콘스탄티노폴리스, 15세기 오스만제국의 수도였고 명칭은 `이스탄불`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지질조사 결과 동지중해 유역에는 17억 배럴의 석유와 122조 큐빅피트(cf)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지자 에게해는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두 나라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문제로 수십 년째 충돌하고 있다. 그리스는 자국의 영토인 에게해의 섬을 포함해 EEZ를 선포한 반면, 튀르키예는 자국의 본토와 연결된 대륙붕까지 튀르키예의 EEZ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에게해, 튀르키예 바로 아래 대한민국 영토의 1/10정도 되는 `키프로스(Cyprus)`라는 섬이 있다. 튀르키예 본토에서 남쪽으로 약 75㎞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그리스 본토와는 약 800㎞ 정도나 떨어진 곳이다. 1974년 튀르키예군이 키포로스를 침공해 남북이 분단되어 남쪽은 그리스계가, 북쪽은 튀르키예계가 지배하고 있다. 튀르키예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남쪽의 키프로스만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2017년 인근 해역에서 발견된 1100억㎥ 규모의 천연가스 개발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튀르키예는 키프로스 섬 해역의 자원이 섬 전체의 자산이라며 키프로스 정부의 독자적인 시추를 중단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긴장 관계가 증폭되면서 양국은 에게해에서 충돌하고 있다. 튀르키예 해안경비대 헬리콥터가 저공비행을 하며 2.6㎢에 불과한 그리스 영토인 로(Ro) 섬에 접근하자 그리스 군은 경고 사격을 가했고, 며칠 뒤에는 그리스 영공에 튀르키예 전투기가 침입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그리스 전투기가 에게해에 추락했다. 

20세기 초, 바다와 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튀르키예는 최근 에게해에 무궁무진한 해양자원이 있음을 알고서 그리스가 가진 에게해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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