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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유적 국가문화재, 통신 강국 이미지 한몫
봉수유적 국가문화재, 통신 강국 이미지 한몫
  • 임채용 기자
  • 승인 2022.12.01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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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용 지방자치부 본부장<br>
임채용 지방자치부 본부장

양산 원적산 봉수대가 올 연말이나 내년 초 국가지정문화재로 고시될 전망이다.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소재한 원적산 봉수대는 전국 최초 주민에 의해 복원돼 그 의미가 남다른데다 봉수 유적 사적 지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원적산 봉수대를 국가지정문화재 시적으로 지정예고를 공고하고 최근 양산시에 이 같은 결과를 통보했다고 한다. 1991년 주민단체인 `원적산 봉수대 보존회`에 복원요구에 따라 전국 최초로 복원된 원적산 봉수대는 경남도 기념물 제118호 지정에 이어 국가문화재 지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산에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원적산 봉수대가 유일하다. 조선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 초기 문헌에는 `원적산 봉수`로, 후기 문헌에는 `위천 봉수`라 기록돼 있다. 문헌에 기록된 봉수대의 이름은 다르나 전국의 다섯 개 직봉 노선 중에서 제2노선으로 직봉의 다섯 번째 봉수대였고, 남쪽에 있는 부산의 계명산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에 있는 울산 언양의 부로산 봉수대로 연결했다. 봉수대 간의 거리는 계명산 봉수대와는 14.82km이고, 부로산 봉수대와는 15.36km이다.

예로부터 이어져 온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제도다. 대략 수십 리의 일정한 거리마다 봉수대를 두어 변방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던 전통적인 군사 통신수단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시대의 봉수제를 새롭게 정비해 1895년까지 운영했다. 특히 전국을 5거(炬) 직봉(전국 봉수망을 연결하는 중요 봉화대)으로 편제해 변경 지역의 방어를 강화하고 적의 침입이나 전투 시작 등 급박한 상황을 빠르게 알리고자 했다. 직봉 가운데 2거ㆍ5거는 서울을 중심으로 남쪽에, 1거ㆍ3거ㆍ4거는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 예고된 제2로 직봉은 총 44개의 봉수로 이뤄져 있다. 한반도의 동남쪽 해안 지역에서 서울 한양 도성으로 이어지는 이 노선은 고려 말부터 대마도 방면에서 침입하는 왜구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봉수망 정보를 알 수 있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ㆍ1908년) 등에 따르면 제2거 직봉은 부산 다대포진 응봉에서 시작해 경북, 충북을 거쳐 서울 목멱산(남산)에 이른다. 문화재청은 제2거 직봉 가운데 지리적ㆍ역사적ㆍ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봉수 유적 22곳을 정밀히 조사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16곳을 사적 지정 대상에 올렸다.

사적 명칭은 `제2로 직봉(第2路 直烽)이다.
문화재청은 "봉수 유적은 조선의 중요 군사ㆍ통신 시설로서 그 시대의 군사ㆍ통신 제도를 현저하게 보여준다"며 "5개의 봉수 노선은 조선 시대 지리 정보에 대한 보고"라고 지정 사유를 설명했다. 북방을 개척하면서 확보한 지리적 지식이나 연안에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면서 습득한 각종 정보의 결정체가 봉수 노선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데 반영됐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봉수는 약속된 신호 규정에 따라 노선별로 작동하는 연속 유산으로의 특이성을 갖는데 우리나라 전역을 아우를 수 있는 연대성이 강한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전국에 산재한 봉수 유적 중 일부만 시ㆍ도 지정문화재로 관리된다. 대부분은 제도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시급하다. 사적 지정은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봉수 유적의 사적 지정은 통신 강국의 면모를 또 한 번 세계에 알릴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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