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작은 영웅들 ①
이태원의 작은 영웅들 ①
  • 이두삼
  • 승인 2022.11.06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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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삼 한국건강연구소장<br>
이두삼 한국건강연구소장

지난 10월 1일 인도네시아 한 축구장에서 13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을 때 많이 놀랐다. 성난 관중 수천 명에게 최루탄을 난사한 경찰의 어이없는 행위로 인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런 압사 참사는 상대적으로 선진국에서 보기 드물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니까 그런 압사 사고는 최근에 일어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가 벌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인 서울 한복판에서 전근대적인 대형 압사 사고가 터진 것이다. 희생자들은 꽃다운 나이의 20대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들은 미래의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도 있는 고귀한 존재였다. 너무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이다.

내가 아는 한 젊은이는 참사 당일 핼러윈을 즐기러 이태원을 향하고 있었다. 오후 6시 21분 이미 이태원에 있던 친구에게 영상 통화를 받았다. 영상 속 엄청난 인파에 놀란 그는 농담조로 "야, 저러다 지반이 무너지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선릉역으로 갔다고 한다.

적어도 참사 4시간 이전에 대형 참사 징조가 보였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하인리히(Heinrich)의 1:29:300 법칙이 있다. 큰 재해 이전에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하고, 운 좋게 지나간 사건이 300번이 있다는 놀라운 통찰이다. 즉 큰 재해 이전에는 크고 작은 조짐들이 명백히 나타난다는 말이다.

사실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할 때 최초의 112 신고가 오후 10시 15분이었고, 그 이전에는 단 한 통의 신고 전화도 없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 의식`을 질타하는 취지의 글을 쓰고자 했다. 4시간 이전에 이태원에 있던 친구나 영상으로 본 젊은이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더욱이 압사 사고 골목을 힘겹게 통과한 사람들은 압사의 위험을 몸소 체험했다.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했을 것이고, 그 현장을 간접적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수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사 이전에 11통의 112 신고 전화가 왔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대한민국의 시민 의식이 아직 죽지 않았다. 11명의 작은 영웅들이 대참사의 징조를 느끼고 신고했다. 얼마나 놀라운 예지력과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인가! 그들은 의인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밝히는 등불이다. 만약 112 신고 전화가 더 많았다면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사실 112 신고 전화는 번거로운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는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11명의 작은 영웅들을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했다. 이들은 일반인과 무엇이 달랐을까?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정치력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생활화가 되어 있다. 예컨대 눈을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고, 상대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양보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여성과 아이,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양보와 배려는 거의 종교와 같다.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엘리베이터에서 남을 위해 단 몇 초도 기다리지 않고, 여성과 아이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신사는 보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앞차가 늦게 출발하면 경적을 마구 울려댄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유튜브 국뽕 채널을 보면 대한민국이 위대한 선진국으로 많이 묘사된다. 이들 동영상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높은 정신문화에 깜짝 놀란다. 과연 그럴까? 8년 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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