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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ㆍ신석호, 어떻게 한국사학계 장악했나
이병도ㆍ신석호, 어떻게 한국사학계 장악했나
  • 이헌동
  • 승인 2022.10.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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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헌 동<br>전 영운초등학교장<br>
이 헌 동
전 영운초등학교장

이 책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이병도ㆍ신석호의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행적을 비판한 것이다.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난도질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병도ㆍ신석호가 해방 후 친일파로 숙청당하기는커녕 거꾸로 한국의 역사학계를 장악해서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하나뿐인 정설로 유지시키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저자 김병기 박사는 독립운동가 희산 김승학 선생의 증손으로 광복회 학술원장을 역임하였다. 3대 독립운동 가문의 가학(家學)인 역사학을 계승하기 위해서 독립운동사를 전공하여 <참의부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희산 김승학은 상해 <독립신문> 사장과 임시정부 학무국장(교육부장관), 참의부 참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희산은 상해에서 임정 2대 대통령이었던 백암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서술할 때 사료수집을 도왔다. 이때 두 선생은 "지금은 우리가 피눈물의 역사를 쓰지만 해방 후에는 나라를 찾은 기쁨의 역사인 <한국독립사>를 저술하자"고 맹약했다. 

그래서 김승학은 참의부 참의장으로서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일제와 싸우는 한편 역사사료를 모으고 역사서를 저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 및 국가건설론연구` 프로젝트의 11번째 책이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승학은 1929년 만주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때 팔다리가 부러지는 숱한 악형에도 사료를 지켰다. 이런 자료와 독립운동가들의 자필이력서 등을 토대로 1965년 <한국독립사>를 출간했다.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저술한 1차 사료인 <한국독립사>는 절판된 지 오래고, 국한문혼용체여서 일반 국민들은 구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읽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희산 김승학 자료를 기증받는 조건으로 <한국독립사> 해제 및 재출간 사업을 진행하였다. 

이 사업은 평가에서도 좋은 평점을 얻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 안병욱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 되자마자 강제 중단시키고 출간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병도ㆍ신석호는 해방 후 서울대ㆍ고려대 등 주요 대학 사학과와 국사편찬위원회를 장악해서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하나뿐인 정설로 만들었다. 역사 선생들을 교육하고 교수들을 배출해 총독부 역사관을 국사 교과서로 만들어 초등학생 때부터 외우게 만들었다.

이 책은 또한 그간 이병도에 비해 덜 부각되었던 신석호의 행적과 그의 총독부 역사관이 어떻게 현재까지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석호는 고려대뿐만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를 장악해서 수많은 제자를 각 대학의 교수로 만들었는데, 그 중요한 제자가 신석호를 학문 인생의 은인으로 높이 사고 있는 강만길이다.

강만길이 노무현 정권 때 대통령 직속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병도ㆍ신석호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이능화만 친일사학자로 선정한 이유는 바로 강만길의 사적 인연에 의한 역사 단죄의 사유화에 의한 것이다. 이병도ㆍ신석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만 오른 연유가 여기에 있다.

1990년에 간행된 <국사편찬위원회사>는 신석호의 재임 기간을 1929년 4월~1965년 1월로 적시하고 있다. 신석호는 1929년부터 조선사 편수회에 근무하였다. 지금의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후신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짝퉁 진보역사학계가 다른 분야의 친일파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성토하면서 정작 내부의 이병도ㆍ신석호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친일행위 단죄라는 민족적 과제를 역사학문권력의 계승이라는 사적이익으로 전환시켜 친일문제를 사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파벌과 인맥과 친분 앞에서 친일파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친일파 문제를 제기한 진보사학자 자신들이 보여 주었던 것이다. 신석호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까지 지내면서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를 만든 사람인데도 문제를 제기하여 바로 잡으려고 하는 진보사학자는 없다. 중국 만리장성의 동단이 황해도 수안이라는 주장을 한 이병도가 식민사학자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3대 독립운동가 후손이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 제자들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안병욱의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유은혜의 교육부로부터 출간금지와 연구비 환수라는 조치를 당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정권교체 백 번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사회에서는 나치 역사관에 협조한 역사가를 칭송하는 역사학자나 진보주의자는 존재할 수 없지만, 한국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에 협조한 역사가를 추종하고 방조하는 짝퉁 역사학자와 짝퉁 진보주의자가 득실거린다. 위의 글은 <이병도ㆍ신석호는 해방 후 어떻게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는가>란 책을 참고하여 쓴 것이다. 식민사학 유풍을 청산하기 위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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