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과 84세 여대생
웰다잉과 84세 여대생
  • 이영조
  • 승인 2022.10.25 2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은 삶의 끝 소망 `웰다잉`
내 생명 스스로 결정 훈련
죽음의 의미 바로 깨닫고
소풍 떠나는 설렘 가득 담고
생을 마감하는 실천 현장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사회복지학 박사<br>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사회복지학 박사

OO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강의실, 새내기 여대생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다. 강의실에서 교수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족히 60세가 넘어 보였다. 이들은 만학도,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고령 임에도 대학의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냈다고 했다. 80이란 고령의 나이에도 이토록 배움이 간절한가. 배움은 이렇듯 고령인에게도 용기를 내게 하는 걸까? 내심 놀라움이 일었다. 

웰다잉은 품위와 존엄을 유지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을 뜻한다. 좁게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의미를 담고 있으며 광의의 개념에서는 일상에서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동시에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생의 과정 전반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더불어 누구도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한다.

생명을 잃는 것은 소중한 물건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가족과 지인, 벗 들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죽음은 아쉬움을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일까. 웰다잉 강의 현장은 진지하고 엄숙했다.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긴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어느 전공과목보다 집중했으며 누구 한 사람의 눈빛도 외면할 수 없었다. 삶의 순간 되돌아보기, 유언장 작성, 임사체험, 강의 내용 하나 하나가 곧 그들이 가야 할 길의 조명이라는 듯 그들은 강의 내내 울고, 웃었다. 

웰다잉은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이루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웰빙(Well-Being)의 연장선에서,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중요하게 인식되면서 2000년 초반에 우리 곁에 조용히 뿌리 내렸다. 웰다잉과 웰빙은 서로 다르지 않다. 죽음조차도 아름다운 삶의 연장, 즉 좋은 삶의 끝이 웰다잉인 것이다. 

두렵기만 한 죽음이,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 존엄한 죽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삶의 미래가 두려운 이유는 준비되지 않은 때문이라고 죽음 교육전문가들은 말한다. 준비된 삶은 만족스럽고 즐겁고, 행복하다. 같은 이유로 죽음 역시 준비되어있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나 낡고 때 묻은 육신의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여행 떠나는 홀가분함으로 세상과 이별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인간은 스스로 존엄해지고 싶어 한다. 그 바람은 죽음 앞에서도 그러했다. 고귀한 존엄의 개념에 죽음을 연결시키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맞으려고 한다. 84세 새내기 여대생이 수강하는 내내 눈빛이 반짝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들 역시도 죽음의 순간까지도 존엄을 유지하고자 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실습을 할 때 작성한 의향서를 들고 와서 필자에게 제출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 듯 후련한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에 자신의 건강이 회복 불가능 상태가 되었을 때 인위적인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자신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의 지정 등록기관에 방문해서 직접 작성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실망한 눈빛으로 "그게 어딘데요?"라고 묻는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자신의 의사와 반한 생명 연장 시술, 의식불명 상태로 숨만 쉬게 만들어 생명을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생명에 대한 스스로 결정하고 고귀한 삶을 살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현대 노인들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의미 있는 삶을, 죽음을 맞아서는 소풍 떠나는 설렘으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 그들의 마음이 진정한 웰다잉의 실천 현장이 되었다. "나 대학 오기를 정말 잘했어." 84살 홍안의 여대생은 20세 새내기 여학생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한풀기에 도전한 그녀의 마음은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 하나 하나가 고목처럼 단단해진 자신의 고정관념이 달콤하고 말랑한 연질의 마시멜로우처럼 부드럽게 변하게 하는 대학생활을 신세계라고 했다. 

나이는 사고를 경직되게 하지만 지혜로움을 담은 새내기 대학생은 세월의 간격을 훌쩍 뛰어넘어 손녀뻘 학생들과 교감하며 만학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낭만의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