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5:01 (금)
자연과 생활서 얻은 통찰을 한글 뜻그림에 담다
자연과 생활서 얻은 통찰을 한글 뜻그림에 담다
  • 이병영 기자
  • 승인 2022.10.24 2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로 이 사람
이호신 화백
(`화가의 한글사랑` 출간)
한글 창제 본질 사랑 등 정신 실천
그림 그리기 30년 결실 곳곳 보여
이호신 화백.
이호신 화백.

이 땅의 자연과 문화 현장을 찾아 붓을 들어 꾸준히 생활산수화를 발표해 온 이호신 화백. 그가 이번에는 오랜 세월 공들여 온 한글서예의 이미지화 작업, 곧 `한글 뜻그림`을 한 데 모은 책 `화가의 한글사랑`을 출간했다.

`한글 뜻그림`이란 화가의 시각에서 한글서예를 표현한 `그림이면서 서예이고, 서예이면서 그림`인 새로운 예술 양식이다. 한글이 지닌 조형성(이미지)과 문장을 아름다운 시각예술로 표현한 것인데, 한글에 담긴 내용을 이미지로 극대화하고 시각적 공감을 자아내는 작업이다.

이는 이호신 화백의 화가적 감성과 모국어에 대한 인문학적 사랑에서 기인한다. 작가는 한글을 `무명을 밝히는 세상의 빛`으로 규정하고, 표음문자인 한글로 언어가 함축한 뜻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왔다. 지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한글의 조형화 작업에 몰두해 온 이 화백은 마침내 한글의 우수성을 아름다운 조형 언어로 드러낸 `한글 뜻그림`을 창안했다. 그리고 `화가의 한글사랑`에 그 모든 작업의 결실을 응축해 담아냈다.

이 작업은 우리 선조들의 언어 표현이었던 문장(시), 글씨(서), 그림(화)과 민화 문자도(文字圖)의 재발견이다. 기존의 한글서예나 문인화, 시화와는 또 다른 조형 방법으로서 작가는 스스로 `한글 뜻그림`으로 명명했다. 이 화백의 `한글 뜻그림`은 문자와 회화가 조화를 이뤄 시각적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자연과 생활 속에서 얻은 통찰을 `한글 뜻그림`에 담아 한글 창제의 본질인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한다. 글의 내용에 따라 글씨체에 변화를 주거나 구성을 달리하고, 주제에 맞는 상징성과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다채롭게 표현한다. 이미지의 극대화를 위해 화면의 구도는 종종 틀을 깨는 파격을 추구한다. 먹과 붓은 물론 화려한 색감과 크레용, 탁본 기법 등을 활용해 끝없이 일탈한다.

바람.
바람.

그리해 보는 이로 하여금 글자를 의미 그 자체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공감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이호신 화백의 `한글 뜻그림`은 보고 느끼고 나누는 글씨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에 뜻을 새기고 얼을 넣고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과 높은 조형 의식, 삶의 진정성이 담긴 한글서예로 격조와 품격, 해학이 깃든 생활서화를 모색하다= 이호신 화백에게 한글은 사랑의 언어다. 그는 모든 생명과 존재에 대한 사랑, 연민의 마음이 한글창제의 기본 정신이며 민들레 꽃씨와 같은 한글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 그 씨앗이 발아되고 꽃과 향기가 돼 강물처럼 오늘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 화백에게 우리의 얼과 마음을 담아 옮기는 그릇으로서 한글은 평생 화두와 같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한글 궁체와 판본체, 흘림체를 익혀 왔고, 한글 고체와 민체, 시각디자인 서체에도 관심을 쏟아 왔다. 한글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기 위해 한글 전시회는 물론 관련 자료를 오랫동안 살피고 수집했다. 그리고 기존의 글씨가 아닌 개성 있는 글씨체의 변화를 모색하며, 전시 제호나 출판 표제 글씨, 시화 등을 꾸준히 써왔다. 그런 가운데 작가는 표음문자인 한글의 낱말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한글의 조형성과 문장을 통한 표현 방법을 연구한 작가는 마침내 한글서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변화, 즉 `한글 뜻그림`이라는 고금에 없던 예술양식을 창안해냈다. 이 화백의 한글서예는 말과 글에 표현과 표정을 그려넣고, 생명과 얼을 불어넣어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예술작업이다.

그림이 글씨가 되고, 글씨가 그림이 되는 시서화(詩書畵)의 일체 말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문자 이전에 글씨에 담긴 내용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한글 뜻그림이다= 이화백의 `한글 뜻그림`은 일면 글자에서 그림으로 회귀하는 작업이다. 글자를 넘어 필획 자체가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해 글자가 그림의 정체로 각인된다.

`화가의 한글사랑` 책 표지.
`화가의 한글사랑` 책 표지.

예를 들어 `불(129쪽)`은 얼핏 검은 색 글자 `불`과 그 바탕에 붉은 불이 오버랩 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은 색 `불` 자는 이미 그림이 돼 검은 불꽃과 붉은 그림자 불꽃이 더불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글자 속에 그림이 꿈틀대는 것이다. 이호신 화백의 `불`은 그림 속에 글씨가 있고, 글씨 속에 그림이 있는 대표적인 한글 뜻그림이다.

`한 잔 술 두 잔 술(95쪽)` 역시 더 이상 글자와 그림의 구분이 무색하다. 술이라는 문자의 구조가 한글 서예의 필획(筆劃)으로 치환돼 있다. 한편 자작시구 또한 술의 문자구조(文字構造)와 같이 가로와 세로로 배치해 단순한 시가 아니라 그림의 일부로 녹아들게 만들었다.

눈으로 보는 그림에서 귀로 듣는 음악, 침묵의 소리까지 형상화하다= 이 화백의 `한글 뜻그림`은 그림에서 소리가 들린다. 작품 `불`은 문자를 가지고 `불이야!` 하고 소리를 내지르듯 그리고 있다. `산다는 것은 꽃 소식을 듣는 일(23쪽)`은 매화가 개화(開花)하는 순간을 귀로 먼저 보게 하며,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러운 것(67쪽)` 역시 `콸콸콸` 흐르는 지리산 계곡물의 푸른 소리를 그린다. `물소리에 귀 씻고(158쪽)`는 폭포수가 용솟음치는 듯하다.

한편, 무심한 일곱 줄기 필획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는 `깊은 강물은 소리가 없네(155쪽)`와 `풍경소리(85쪽)`, `강물(39쪽)` 등에서 이 화백의 붓질은 시공의 적막을 넘나든다.

글자와 그림, 사람과 자연이 색으로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빛깔을 구현하다= 이 화백은 문자와 그림 이전에 재료가 가진 본래적 물성, 즉 한지의 성분과 물감의 색에 천착한다. 이 연구를 통해 인조색과 자연색을 넘나들며 먹과 색의 놀라운 조화를 이뤄낸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색으로 하나 되는 생명의 빛을 구현한다.

전통한지를 염색해 바탕지로 사용하는 창의의 길을 걷다= "내 붓길에 한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 한지를 염색해 보려고 30년 전 전남 보성군 벌교 징광리에서 몇 달간 염색 공부를 했다. 나는 우리 한지를 서화 용지로 단순하게 쓸 것이 아니라 오방색(五方色)이나 간색(間色)의 아름다움을 바탕지로 응용하고 싶다."

이 화백은 오래 전부터 전통한지를 사용해 왔다. 우리 한지는 질기기로 수명이 1000년을 가는 우수한 문화유산이다. 그는 이 한지를 그냥 쓰지 않고 여러 가지 염료로 염색해 바탕지로 보관해 뒀다가 `한글 뜻그림`을 제작할 때 내용에 맞는 빛깔의 한지를 꺼내 사용한다. 한글 내용과 그림 이미지를 구상하고 나서 붓을 들기도 하고, 반대로 염색된 바탕지에 이미지를 구현하고 난 다음 글씨를 쓰기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