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2:48 (금)
사람과 영화 향기 물씬 나는 `지석` 그리고…
사람과 영화 향기 물씬 나는 `지석` 그리고…
  • 김중걸 기자
  • 승인 2022.10.19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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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위원<br>
김중걸 편집위원

모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개ㆍ폐막작과 특별상영작으로 씨네필에게 선보였다. 영화 <바람의향기>(Scent of Wind)는 이란의 영화감독 하디 모하게흐의 작품이다. 첫 장면은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에서 한 남자가 위태롭게 돌을 두들기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 준다. 돌이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 하반신 장애가 있는 남자의 위태로운 움직임은 각박해진 세상과 이를 이겨내는 삶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영화는 이란 오지 마을에 하반신 장애가 있는 남자가 전신마비 장애를 가진 아들을 간호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느 날 전기가 끊기자 고장 신고를 하기 위해 두 손으로 걸으며 길을 나선다. 집들을 전전한 끝에 겨우 전화를 걸어 신고를 한다. 영화는 보수기사가 방문하면서 사람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부품을 찾아 산간오지 전봇대를 찾아다니는 기사는 겨우 찾아낸 부품을 머리에 이고 외줄에 의지해 강물을 건너는 고단한 수고를 이어간다. 힘들게 찾아낸 부품을 들고 고장 난 전봇대로 향한다. 그러나 기름이 새 다른 부품으로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내일 오전에나 부품받을 수 있다는 무전에 그는 시내로 돌아와 발전기와 욕창방지 전기매트를 자비로 구입하고 렌터카를 임대해 남자의 집을 찾는다. 집에 불이 켜지고 영화는 끝이 난다. 러닝타임 90분 내내 조용하고 고요하다. 느리면서도 잔잔한 그 시간에 우리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신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마음의 장애를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고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세상을 살아간다. 이유있는 선의도 있지만, 이유 없는 선의도 어딘가에서는 존재한다. 장애남자는 바늘귀를 꿰지 못하는 노인을 되돌아와 돕고, 보수기사는 시각장애인 남자의 연인과의 데이트를 돕는다. 꽃다발을 만들어 주고 징검다리 건네기도 도와준다. 힘들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이 영화는 훈훈함과 위로, 또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세상이 너무 삭막하고 인간이 너무 무섭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접하는 뉴스의 많은 부분이 그렇다. 인간의 선의가 남아있는지 의심스러운 세태 속에서 <바람의 향기>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영화"라고 했다.
폐막작 <한남자> (감독 이시가와 케이) 역시 사람의 이야기이다. 내가 알던 사람이 한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뀔 때 우리의 이성과 감정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해 질문을 한다.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와 살던 리에는 다이스케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성실하고 착한 남편과 딸을 낳고 행복하게 지내던 중 사고로 죽으면서 남편의 실체는 거짓 이름에 온통 가려진다. 리에의 요청으로 남편의 실체 찾기에 나선 재일동포 출신 변호사는 살인자의 아들이었던 다이스케와 이름을 교환한 진짜 다이스케가 겪었던 차별과 아픔 등을 알게 된다. 재일동포인 그는 자신에게 못마땅해하는 일본인 아내 가족에게 차별감을 느낀다. 그 역시 남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들처럼 과거를 지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 영화는 나를 나로 만드는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미스터리 속에 충실히 담았다.

다큐멘터리 <지석>은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였던 고 김지석의 영화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7년 5월 18일 그는 칸영화제 출장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는 예기치 못한 그의 죽음에서 오랜 영화인 친구와 동료들의 마지막 시기 그를 괴롭혔던 일들을 떠올린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창립멤버로 `아시아 영화 허브`라는 부산영화제의 정체성을 구상하고 완성한 그를 추모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다. 영화에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자파르 파니히 등 부산영화제와 함께 성장한 아시아 영화계 거장들이 흥미로운 지석의 일화를 들려준다. 상영에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창립 전부터 김지석 프로그래머와 함께해온 이용관 이사장은 "나도 아직 <지석>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도, 앞으로도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직 김지석이라는 사람에 관한 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다"라고 동료를 떠나보낸 아픔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러니 오늘 <지석>을 보실 여러분들이 나중에 혹시 나를 길에서 만나더라도 영화가 어땠다고 말하지 말아달라. 저 대신 잘 봐달라"고 말했다. 3편의 영화 모두 인간의 연민을 담았고 사람의 향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의 유작 `김샘은 출장중3`은 BIFF의 역사와 영화제의 중요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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