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3:15 (토)
시설물 상시 개방해 노인대학 운영ㆍ청소년 예의교육
시설물 상시 개방해 노인대학 운영ㆍ청소년 예의교육
  • 이병영 기자
  • 승인 2022.09.12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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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명소 `마산 향교`
매년 2ㆍ8월 춘ㆍ추기석전대제 봉행
학생 한문 공부로 한학 관심 높여
경로효친 사상 고취ㆍ전통문화 전승
명륜당ㆍ유림회관 등 시설물 개방
1920년 철거 건물 1990년 11월 복원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에 있는 `마산향교` 정문 풍화루 전경.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에 있는 `마산향교` 정문 풍화루 전경.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인 향교는 지역 역사와 지방 교육의 뜻을 품고 있다.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에 있는 `마산향교`은 세월과 함께 부침을 겪으며 오늘에도 교육기관으로 상징성을 더하고 있다. 류정조 전교를 만나 마산향교의 내력과 펼치고 있는 각종 행사에 대해 들어봤다.

마산향교, 성현 기리고 예의교육 최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 입구에 위치한 마산향교(馬山鄕校)가 인근지역의 주민들에게 매년 2월과 8월의 상전월 춘기ㆍ추기석전대제를 봉행함으로써 성현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은 물론 청소년들에게 예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어 지역사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윤리와 도덕 등 예의교육에 많은 일조를 하고 있다.

마산향교는 해마다 선비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지역의 노인들을 위해 선비대학(9월 7일) 2학기를 개강해 연세가 높으신분들을 대상으로 대학교수 및 지역의 교장선생님들을 초청해 성현을 기리고 윤리ㆍ도덕 등 예의교육과 서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학교와 상의해 공문을 발송, 참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복을 입고 절구를 이용해 찹쌀 가루를 만들어 찰떡을 빚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어 떡에 대한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마산향교 풍화루 입구 옆 `온고지신` 비석.
마산향교 풍화루 입구 옆 `온고지신` 비석.

그리고 한문 공부도 병행하고 있어 학생들이 한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마산 향교는 고려ㆍ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으로 교궁(校宮) 또는 재궁(齋宮)이라고 하며, 지방의 관학으로 민풍(民風)과 예속(禮俗)을 순화하고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된 제향(祭享)과 교육의 양대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산향교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진해현과 함께 설치됐으며, 진해향교로서 현 위치에 창건됐으나 이후 임진왜란(1592∼1598)때 방화로 소실된 것을 영조(1752∼1776년)때 재건했다.

현재의 건물 또한 지난 1920년에 철거됐던 것을 1990년 11월에 복원한 것이다. 그 이후 지난 1993년 창원군 향교로 재건됐다가 1993년 창원군이 마산시에 흡수 통합됨으로써 마산향교로 개정됐다. 마산향교는 1995년 1월 1일 자로 도농 통합이 이뤄지기 이전까지는 진해향교로 불렸다.

마산향교 정문 풍화루(風化樓) 입구에는 하마비(河馬碑)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정문 옆에는 마산향교 안내 표지판이 서 있으며 그 앞에는 온고지신이라는 큰 돌비석이 버티고 서 있다. 강학 공간인 명륜당은 정면 5칸의 팔작지붕이며, 성현들의 신위를 배안한 대성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향교는 경로효친사상을 고취하고 전통문화를 보존ㆍ전승하기 위해 기로연(耆老宴)을 펼치고 있으며, 노인들에게 컴퓨터, 서예 무료교육, 주민ㆍ학생들에게 유교문화 전시관, 도서관, 명륜당, 대성전, 유림회관 등 향교의 각종 시설물들을 상시 개방하고 있어 윤리와 도덕 등 예의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마산향교 풍화루 입구에 있는 `하마비` 표지석.
마산향교 풍화루 입구에 있는 `하마비` 표지석.

또한 유교문화전시관에는 한국식 혼례와 함께 유교의 총 본산이자 공자가 태어난 곳인 중국 니산 공묘(곡부마을)에 대한 각종 자료와 사진물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던 `향교`

향교는 고려 때 시작해 조선시대 말까지 내려온 지방의 교육기관이며 서울의 남학을 말하며 일명 사학(동학ㆍ서학ㆍ중학)이라 불렀다.

향교는 성균관의 하급기관으로써 문묘(文廟), 명륜당(明倫堂)과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철, 선현을 제사하는 동무, 수무와 동재, 서재가 있어 동재에는 양반, 서재에는 서류를 보관해 뒀던 곳이다.

향교의 시초는 이렇다. 고려 충렬왕 30년(1304년) 고려의 국도인 개성에 성균관을 창설하고 나라 안에 준재(俊才)를 뽑아 윤리(倫理)와 도덕(道德), 문예(文藝)를 연구하는 기관으로써 장학금을 모아 연구생들에게 학술을 강학해 왔다. 이후 조선왕조의 한양의 천도 때문에 지난 태조 7년(1398년) 성균관을 서울 현지에 건립하고 지방에는 향교를 증설했다.

강학 공간인 `명륜당`.
강학 공간인 `명륜당`.

조선의 태조는 그 즉위교서에서 국가의 2대 치국정책을 밝혔는데, 그 하나는 `농상(農桑)의 장려`이고 다른 하나는 `흥학(興學)`이었다. 즉 다시 말하면 농업과 교육에 중점을 둬 민생의 안정과 민풍의 순화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국가가 교육 정책에 적극 개입해 유학을 중심으로 교육사상을 확립하고, 교육 체제를 정비하는 동시에 교육 과정과 교육 방법을 정비해 나갔다. 그리고 국가가 지향하는 삼대(三代)의 이상적인 도덕 국가를 건설키 위해 교육기관에서는 유학에 밝은 인재를 양성함과 아울러 유학의 발전에 공이 큰 유현(儒賢)을 제향하게 된다.

관학이던 성균관이나 향교에, 또 개인 설립의 서원에 문묘나 사묘(祠廟)를 둬 이에 대한 제향을 가장 중요한 행사로 삼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조선조에는 관학(官學)으로 중앙에 성균관과 사학(四學), 지방에 향교가 있었고 사학(私學)으로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풍화루 옆에는 마산향교 안내 표지판이 서 있으며 그 앞에는 고지신이라는 큰 돌비석이 버티고 서 있다. 정문인 풍화루(風化樓)는 솟을삼문의 맞 배석 지붕이고 강학 공간인 명륜당은 정면 5칸의 팔작지붕이며, 성현들의 신위를 배안한 대성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하마비 관학은 경국대전에 의해 규정된 것이었으며, 사학은 사림파 유학자들에 의해 그리고 서당은 부락단위로 개인에 의해 운영되던 교육기관이었다.

대성전 모습.
대성전 모습.

향교는 각 지방관아의 관할 하에 둬 부(府), 대도호부, 목에는 각 90명,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고 종 6품의 교수와 정 9품의 훈도를 두도록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규정을 했다.

고종 31년(1894년)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향교는 이름만 남게 돼 문묘를 향사했으며, 1900년에는 향교재산관리규정을 정해 재산을 부윤ㆍ군수 등이 관장하도록 했다.

현재 전국에는 231개의 향교가 있으며 재산목록에 등재돼 있는 토지는 48만여 평으로써 재산은 문묘의 유지와 사회교화사업의 시설에 충당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향사하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정문, 유림회관, 명륜당, 대성전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전학후조의 전형구조로써 각 건물은 대성전으로 이르면서 대지가 한층씩 상승하도록 기획해 문조를 중시한 배려를 엿보게 한다.

한편, 마산향교는 대지면적(5865㎡)에 건평(205.9㎡)이며 대성전 34ㆍ명륜전 87ㆍ관리사 84ㆍ전시관 교육복지회관ㆍ사무실 등 각종 부대시설이 설치돼 있다.

마산향교의 단체 관람, 방문 및 컴퓨터, 서예 교육 신청은(055-271-6300)번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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