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을 내다보자 21
나라 밖을 내다보자 21
  • 박정기
  • 승인 2022.09.0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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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박정기 전 한전ㆍ한국중공업 사장

전쟁은 4년을 끌었다. 전쟁에 진 남부 사람들의 가슴엔 분노와 원한만이 남았다. 집은 불타고, 남편과 아들을 잃은 남쪽 부인들의 한과 슬픔을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링컨은 순교자였다. 그는 마지막 피를 조국(연방 수호)의 제단에 뿌렸다. 남부 미국인들의 사무치는 원한과 고통을 갚는 길은 누군가 속죄의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착한 사람 링컨이 누굴 희생양으로 삼겠는가? 에이브러햄 링컨 `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한 것이다.

포드극장에 링컨이 참석하리란 건 비밀이 아니었다. 4월 14일 저녁 극장 문 안팎에도, 로열석 그 어느 곳에도 경호원은 없었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행차다. 링컨에 대한 남부 사람들의 증오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하늘은 신생 아메리카를 탄생시키기 위해 워싱턴을 보냈다면, 이 신생국이 위대한 국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링컨을 보냈을 것이다. 이 위대한 거인은 미국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모든 진통을 안고 저세상으로 갔다. 링컨은 노련한 선장이었다. 형제간의 싸움으로 합중국은 표류하는 난파선이 되었다. 그는 탁월한 솜씨로 풍랑을 헤치고 난파선을 구했다.

링컨은 꿈 많은 사람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천명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그의 꿈이요 이상이었다. 그의 꿈이 실현되자면 연방이 존속하여야 하고,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서도 연방이 존속하여야만 하였다. 그래서 링컨은 첫째도 연방이요, 둘째도 연방 존속이었다. 그리고 전쟁까지도 감수하였다.

링컨은 미국의 미래상을 제대로 그려 보인 위대한 화가였다. 링컨의 큰 그림에서 그랜트는 미국의 미래를 보았고, 후계자 존슨(Andrew Johnson)은 영감을 얻었다. 웬만한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남부를 응징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끝내 그들의 고집을 꺾었다. 그리고 모두 용서 하였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누구의 죽임이건 비극이다. 합중국 대통령이 남부의 암살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죽음의 비극성과 비장감은 남부 사람들의 깊은 원한에도 큰 파문을 던졌을 것이다. 만일 링컨의 희생이 없었다면 남북의 통합과 화합이 과연 무리 없이 이루어졌을까? 한 위대한 인간이 살아서는 연방을 지키고, 죽어서는 남북의 화합을 이루게 하였다.

`남북전쟁`을 쓰면서 내가 가장 애석하게 여겼던 사람의 하나가 남부연합의 대통령 데이비스다. 그는 웨스트 포인트를 나와 상원의원에 국방장관까지 역임한 경륜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과 가족에 충실하고 일생을 훌륭한 공인으로 시종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쟁에 패하고 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신념, 남부 독립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은 사람이다.

그가 남부의 대통령으로서 사태를 전쟁으로까지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인간적 고민과 지도자로서의 처지를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1862년 9월 앤티텀 전투가 끝났을 때, 그는 남부의 장래 진로를 재검토하고 전쟁을 어떻게든 종식했어야 옳았다.

왜냐하면 앤티텀 전투를 계기로 유럽 열강이 남부 정부를 승인할 가망은 영영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하였을 때 남부를 동정하고 지지해온 북부의 기반이 사라진 것도 재빨리 간파했어야 했다. 지도자의 소임은 말할 것도 없이 첫째가 국권을 수호하고 다음이 백성을 편안케 하는 일이요, 국가란 큰 배의 키잡이로 역사의 물결을 잘 타고 넘어 백성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는 또한 시야를 넓혀 북부가 시도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함께 공유하는 안목을 가졌어야 했다. 남부는 처음부터 북부의 평등주의와 경쟁 원칙을 가치관으로 하는 산업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신세계의 미국적 실험에 공조했어야 했다. 특히나 건국의 아버지들이 내세운 자유와 평등(민주주의) 이상과 연방제의 의의를 깊이 이해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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