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20:12 (금)
영화 `초원의 빛`과 워즈워스의 시
영화 `초원의 빛`과 워즈워스의 시
  • 이광수
  • 승인 2022.08.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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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br>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이었건만/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진/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초원의 빛이여/꽃의 영광이여/ - 이 시는 추억의 명화 `초원의 빛` 엔딩자막이다. 젊은 청춘남녀의 애절한 첫사랑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린 이 영화는 공전의 대히트를 쳤다. 거장 엘리아 카잔 감독이 연출한 `초원의 빛`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고 여러 부문에 수상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다. `첫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속설을 전한 이 영화는 나탈리우드(디니 역)와 워렌비티(버드역)가 열연해 전 세계연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잘생긴 부잣집 아들 버드와 청순한 이미지의 디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고등학생인 두 사람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첫사랑에 목말라하는 청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서로 사랑하지만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디니와는 달리 부잣집 아들로 뭇 여학생 사이에서 인기였던 버드는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는 디니를 멀리하고 다른 여학생과 어울린다. 이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디니는 신경쇠약증세로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더욱이 부모로부터 버드와의 교제를 금지당하자 신경증세의 악화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버드의 집도 대공황에 따른 투자주식의 폭락으로 파산한다. 버드의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자살하고 버드는 공부를 포기한 채 아버지가 사둔 옛 목장이 있는 마을로 이사한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버드는 식당 집 딸 안젤리나와 결혼해 사내 아기를 둔 아빠가 된다. 한편, 디니는 정신병원에서 알게 된 의학도 존의 청혼을 수락해 새 출발을 다짐한다. 병원에서 퇴원해 고향에 돌아온 디니는 친구들과 함께 버드의 농장을 찾는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이제 친구로서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버드는 그녀와 헤어질 때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어`라는 독백을 남긴다. 이 영화의 라스트 신이 단연 압권이다. `사랑은 젊은 날 우리를 휘몰아치고 지나간 소나기인걸….`이란 디니의 독백과 함께 월리엄 워즈워스의 시가 자막으로 스크롤한다. 이 영화는 필자가 한창 감수성이 강한 중학생 때 처음 보고 감동한 나머지 고등학생 때 리바이벌 상영된 영화를 여러 번 보았다.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의 아픔이 안타깝고 너무 가슴 아파 극장 문을 나설 땐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월리엄 워즈워스의 시로 알려진 이 영화의 제목 `초원의 빛`은 그의 시 제목이 아니다. 번역된 시도 국내에서 영화가 상영되면서 원래 시에는 없는 엉뚱한 내용으로 개작된 시가 워즈워스의 시로 알려져 있었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질수록/그대를 향한 마음 희미해진다면/ 이 먹빛이 하얗게 마르는 날/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개작치고는 걸작이다. 유명시인의 시를 이렇게 오역한 것은 원작자에 대한 모독행위이다. 워즈워스의 원래 시 제목은 길다.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로 `송가: 초기 유년 시절의 회상에서 나온 영혼불멸의 암시`로 번역된다.` 초원의 빛(Splendour in the Grass)`이라는 영화 제목은 이 시의 내용 중 한 단락을 떼어 붙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워즈워스는 `초원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짓지 않았다. 장시의 한 단락을 잘라내어 `초원의 빛`이라고 제목을 단 것이다. 1964년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될 때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모 출판사가 시인 겸 국문학자인 모씨에게 부탁해 멋지게 우리말로 개작한 것이라는 히든 스토리가 있다. 이런 엉터리 번역 시를 대문호 워즈워스의 시라고 멋모르고 외웠으니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원작 시가 어떻게 개작되었든 간에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명화로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사회통념에 의해 억압된 열정의 표출과 대공황이라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현실감 넘치는 장면으로 리얼하게 묘사했다. 이 영화는 엘리아 카잔이라는 거장이 즐겨 구사한 전통적 서사형식과 메소드(method) 연기, 프랑스 누벨바그(프랑스 영화적 경향)의 영향을 받은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형식을 고루 사용해 무척 감동적이었다. 누군가 갖고 있는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명화이다. 다만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나탈리 우드가 그의 남편인 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함께 탄 보트가 뒤집혀 전복되는 바람에 43살의 나이로 요절해 안타까움이 컸다. 그녀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사고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했던가. 커다란 눈망울에 슬픔을 가득 머금은 청순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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