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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이야기 11
출가이야기 11
  • 경남매일
  • 승인 2022.07.1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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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 스님산 사 정 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 스님산 사 정 담여여정사 주지ㆍ(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절집에서 출가를 말할 때 신출가(身出家)와 심출가(心出家)로 나뉜다. `신출가`란 세속을 떠나 절에 들어가 수계를 받는 외형적 출가를 말하는 반면 `심출가`란 세속과 절집이라는 위치에 상관없이 욕망을 떠나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몸만 세속을 떠나는 것이 아닌 마음까지 탈속하는 심출가야말로 수행의 수준에서는 더욱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불가에서 남성 불자를 흔히 거사(居士)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세속에 있으면서 `한 소식`을 한 도인들을 지칭하였다. 출가하지 않고 진리를 선양했던 3대 거사를 칭하자면 부처님 재세 당시의 `유마거사`와 중국 당나라 시대의 `방거사` 그리고 우리나라 신라 시대의 `부설거사`가 있다. 이들은 대표적인 심출가자로 세속에 머물면서도 욕망을 벗어나 진리를 깨우친 대 자유인들이었다. 그러나 욕망의 지배를 받는 범부들은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출가는 이들에게 수행하기 가장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주어 수행의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20대 중반 인생의 행로에 대해 고민할 시절, 출가하지 않고 거사로 살 것을 꿈꿨다. 그러나 외통수에 몰려 출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송광사ㆍ묘관음사를 거쳐 선무도 총본산이 있는 경주 골굴사까지 가게 됐다. 주지 스님께 인사드리고 난 다음 날부터 예불과 공양 그리고 도량청소가 이어졌다. 거기에 더하여 이곳의 행자들은 시간을 정해 가파른 산을 뛰는 체력단련과 선무도 그리고 봉술수련 등을 병행해야 했다.

당시 골굴사에는 선무도를 수련하는 외국 출신의 스님 두 분이 있었고 선무도를 지도하는 사범 한 분과 나보다 먼저 온 행자가 한 사람 있었다. 훗날 우연히 TV에서 `인간극장`을 보았는데 이 당시 유럽에서 온 비구니 스님과 우리를 가르쳤던 사범님이 결혼해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살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 나와서 한편으로 반가웠고 한편으론 속세에서 치열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애잔해지기도 했다. 행자는 대학에 휴학 중이었고 행자생활 과정을 마치면 선무도 도량의 사범이 된다고 하였다. 나는 그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였는데 서로가 친분을 쌓아갈 무렵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골굴사에 이 사범이란 분이 새로 온다고 하였다. 그는 마른 체격에 무술도 잘하고 깡다구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저녁나절 무심코 공양간을 지나다 보니 누군가 밥을 먹고 있었는데 순간 `저 이가 이 사범이겠구나` 짐작하였다. 그러다 그의 옆 모습을 보는데 굉장히 낯이 익다 싶었다. 순간 이 사범이란 이가 군대 시절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후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하고 얼른 행자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곧바로 식사를 마친 이 사범은 나 혼자 있는 행자실로 찾아왔다. 그는 나를 보고는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심 병장님이 맞으시군요"하며 무척 반가워했다.

되도록 나를 숨기고 싶었으나 한정된 공간에서는 모르려야 모를 수도 없었다. 나도 반가움을 표시하였고 그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묻고는 정말 잘 왔다고 기쁘게 맞아 주었다. 군대에서는 한참 후임병이었는데 여기서는 나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는 사범으로 윗사람이 되었다. 서로의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뒷날 나의 출가 후 이 사범도 출가해 서로의 위치는 다시 역전이 되기도 한다.

이 사범과는 군대 있을 때 서로 위해주고 따랐던 좋은 사이여서 이날 이후로 골굴사 행자 생활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 사범이 도량 대중들에게 심 행자는 자기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니 잘 대해 주라고 당부해 놓았고 대중들은 더욱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함께 생활하던 행자가 은근히 짜증을 내고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몇 번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얼마 후 드디어 사단이 나고 말았다. 그날은 이유 없는 그의 짜증에 그동안 참고 있었던 화가 폭발하였고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아 호되게 나무랐다. 사정을 알고 보니 그는 이 사범과 나와의 친분으로 사람들이 나에게 잘 대해 주는 것에 대해 질투심이 일어 심술을 부린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의 철없는 행동을 더 나무라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부질없다 싶었다. 그는 나에게 사과하며 함께 행자 생활을 계속하자고 권유했지만 불같이 화를 낸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이 사범에게도 누가 될 것 같아 골굴사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순수하기는 하였지만 인내심이 많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절집에서는 `신출가`와 함께 두 번째의 `심출가`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때 아직 제대로 된 `신출가`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골굴사와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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